`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을 읽고나서 독후감 공윤독후감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 을 읽고
-< 의학, 과학을 인간적으로 다룬 외과의사의 솔직한 이야기 >
나는 예전부터 의학적인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았다. 여기서 의학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꼭 생물학이나 과학적인 지식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더 많이 관심 있는 의학적인 이야기는 의사들이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느끼는 책임감, 자신의 의료 행위에 대한 믿음과 불확실성, 현대 의학의 안전성과 한계, 인간 복제나 생명공학에 대해 느끼는 생명 존중에 대한 고민, 의료 사고에 대한 죄책감 등 의사들의 인간적인 고민들이었다. 평소에 이런 의사들의 이야기에 대해 관심도 있었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사례나 이야기도 듣고 토론도 해 보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이나 신문기사 등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고무적인 이야기들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딱 내가 원하던 내용을 접했…(생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와 신출내기 의사들에게 경험을 쌓게 해야 한다는 상반되는 두 가지 명제 사이의 고민에 대한 내용이었다. 종합 병원을 자주 가 보거나 가족 중에 큰 수술을 한 적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크고 중대한 수술을 해 본 적이 없는 초보 의사가 어떻게 진정한 외과의가 되어가고 수술 실력이 늘어서 대담하게 메스를 들고 사람의 살에 칼을 댈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문제지만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따져본 적이 있었다. 초보 외과 의사의 수련 시스템 ... 만약 이 문제가 의사들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거나 비행기를 만드는 엔지니어의 문제 였다면 “수많은 경험과 실패를 통해서 진정한 엔지니어가 되는 것” 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겠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에게 “연습” 또는 “실패” 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언제가 되던 한 번은 경험이 없는 의사가 처음으로 위급한 환자를 다른 선배의 도움 없이 수술할 일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생명이 위험한 그 환자는 경험이 없는 의사의 실습 대상이 되는 것인가? 1부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내용이 솔직하게 나와 있었다. 이 책을 쓴 저자도 아직 전문의가 아닌 레지던트로서, 수술을 할 때 환자들이 자신이 레지던트라는 사실에 대해 불안해하면, “걱정 마세요, 전 그냥 어시스트만 합니다. 수술은 항상 스태프 선생님이 책임집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도 그런 말이 좀 속임수 같다고 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수술을 받을 때 많은 환자들이 레지던트들의 경험을 늘리기 위한 “실습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도 놀란다거나 그런 의사들의 행동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수련 시스템이 아니라면 어떻게 신출내기 의사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겠는가 ? 미래를 위해 누군가를 훈련시키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모두의 몫이다. 만일 숙련된 의사들만 수술을 하게 한다면, 더 이상 숙련된 의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하는 의료행위에 완전히 확신이 없고 자신들이 숙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자들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의사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들이 자신의 가족을 수술할 때는 레지던트는 절대 수술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딜레마 적인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내용은 언젠가 한번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의료 사고, 과실” 에 대한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예전에 자신이 행했던 의료 사고에 대해서 솔직하게 고백한다. 저자가 의료 사고가 나게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 할 때는 너무 실감나서 꼭 스릴러물이나 심장 박동 수를 빠르게 만드는 추리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 순간에는 알지 못하고 헤매다가 나중에서야 후회하는 모습을 보니 완벽해야 한다고 느꼈던 의사들이 참으로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그런 경험이 많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길이 있었는데도 그 때는 생각을 못하고 더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경우,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단지 후회하고 다음에 더 잘해야지 하면 되지만, 의사들은 그런 순간적인 판단의 오류로 심하면 의료소송을 당하기도 한다. 얼마나 마음의 부담이 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들이 만약 과실을 범했을 때 우리는 그 의사를 완전히 비윤리적인 의사, 업무 태만, 능력 부족 등을 운운하며 매도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들도 자신들이 완벽해 지길 바라며 의료사고에 대해서 창피스럽게 생각하거나 예민해 할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만약 치명적인 의료 사고에 대해 들었을 경우 의사들은 그런 사실들에 대해 발끈 하거나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들도, 의사라면 누구나 그런 의료 사고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는 물론 행해져서는 안 되지만 그것을 아주 끔찍하게 죄악시 하는 풍토가 의료 사고를 더욱 더 쉬쉬하고 감추게 되는 이유라고 했다. 의료사고가 있었다면 그것을 공공연하게 이야기 하고 다음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예민한 일인 것은 사실이다. 의료사고의 내용을 공공연하게 밝힐 수 없는 현실에서, M&M 콘퍼런스 (유병 및 사망사례회의)라는 시스템의 존재는 흥미로웠다. 이 시스템은 의사들이 유일하게 자신들의 의료 과실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어떻게 하면 그 과실이 없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을 의논해 보는 제도이다.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왔다 갔다 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 이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도 하고 무조건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의료사고의 피해자가 나의 가족일 수도 있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의료 사고로 인해 평생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는 의사의 모습도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의사들에게 요구할 것은 완벽이 아니라 완벽을 향한 중단 없는 노력이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2부의 제목은 “불가사의”로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의료 사례들이 나와 있었다.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었던 내용은 13일의 금요일에 대한 것이었다. 의사들, 특히 외과 의사들은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이 흔히 말하는 징크스, 예를 들면 연주를 할 때 절대 노란색을 입지 않는다던가, 어떤 야구 선수가 경기 전에는 꼭 닭고기만 먹는다는 이런 미신들을 거의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과학적이고 정확한 의료 행위를 해야 하는 의사들이 그런 미신을 믿는다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만약에 꼭 자신들이 선호하는 수술화가 있다던가 하는 징크스가 있다고 해도 “다른 신발들은 편하지가 않아서 말야 ”라는 변명을 하곤 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13일에 금요일에 대한 저자의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응급실 야간 당직을 정하는데 은근히 의사들이 13일의 금요일 밤을 피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는데 동료들이 아마 최고로 바쁜 밤을 맞게 될 거라고 하자, 그는 웃어넘겼다. 그리고는 도서관에서 13일의 금요일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정말로 교통사고 건수가 이례적으로 52% 나 증가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변수가 있어서라고 생각하고, 또는 ‘텍사스명사수의 오류’를 운운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이 사례를 읽으면서 실제 13일의 금요일의 응급실 야간당직이 어땠을까 결과가 아주 궁금했다. 결과는 참 흥미로웠다. 저자는 응급실로 들어가자마자 넘쳐나는 사고 환자들에 기가 질려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13일의 금요일이라서 당연히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쉴새없이 응급환자 호출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아직은 미스테리하고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사례로서 알 수 있었고 참으로 흥미로웠다.
3부는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포괄할 수 있을 것 같은 단어인 “불확실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첫 번째는 “의료결정,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모든 결정은 의사들이 내렸고 환자들은 하라는 대로 따랐다. 하지만 최근에는 치료결정은 환자들이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환자 자신의 몸이 아니냐는 것이다. 나는 이런 주장에는 반대한다. 의사들도 더 나은 방법을 결정할 수 없는데 의학 지식에 무지한, 특히 병중에 있는 환자에게 무턱대고 그런 중대한 결정을 맡겨 버린다는 것인가? 무책임 하다는 생각, 책임회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의료결정을 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의료 결정은 의사와 환자, 그리고 그 병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환자의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의 의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3부에서 또 관심을 끌었던 내용은 의사들의 불확실성과 직감에 관한 내용이었다. 의사들이 직감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때때로 들어맞는 경우가 있어서 라고 했다. 너무나도 분석이고 완벽한 수치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것 같은 의사들이 날마다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그것에 익숙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몇 분의 몇의 확률로 환자가 어떤 병에 걸릴 수 있다는 확실한 수치는 사실 의미가 없다. “그 병에 걸릴 확률이 거의 없다고 했지만 걸렸고, 병을 이겨낼 확률이 없다고 했지만 이겨냈다” 는 엘리노어의 사례는 의학은 과학이지만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3부에 걸친 실제 외과의사의 이야기와 사례들을 읽으며 의학에 대해서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의사들의 세계에 대해 더 연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외과 의사들의 세계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외과의가 되어 메스를 들고 수술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외과 의사의 일이 나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대단한 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에게 어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라고 한다면, 특히 혹시 조금이라도 잘못되어 그 환자에게 피해가 간다면 나는 아마 그 죄책감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니 의사들이 하는 일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의사들이 완벽한 의료행위를 하는 냉철한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의사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우리보다 더 의학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고 연습을 많이 한 것이지 처음부터 응급 상황들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냉철하게 대처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관심 있었던 분야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어서 좋았고, 현대의학에 대해서 너무나도 솔직하게 적힌 책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현대 의학에 대해서 사례나 생각들을 더 많이 접해보고 싶고, 확실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 토론도 해보고 싶다. 평소에는 접해 볼 수 없었던 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읽어보니 참 흥미로웠고 기억에 남는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