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왕`을 읽고나서 희곡독후감 운명에 따르느냐

운명에 따르느냐, 운명을 거역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을 읽고
‘오이디푸스 왕’ 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어서,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내용은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제목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을 이 비극은, 너무나 인상적인 것이라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그 파급력도 매우 크다.
‘오이디푸스 효과’ 라는 말이 있다. 예언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끔찍한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결국 그 노력 때문에 예언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끔찍하다. ‘오이디푸스 왕’ 이 바로 그런 이야기이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나라에 나쁜 일들이 생기자 신탁을 청한다. 신탁의 내용은 테베의 전 왕인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찾아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나라의 불행을 해결하기 위해 라이오스…(생략)

통해 관객에게 보고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그럼에도 관객이 받는 충격은 굉장하다.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려는 극 초반의 오이디푸스와 모든 것을 알게 된 극 마지막의 오이디푸스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인상적이다. 나라의 불안을 다스리고자 했던 오이디푸스는 말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하늘의 일이건 땅의 일이건, 비록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어떤 역병이 이 나라를 덮치려 하고 있는지 그대는 알고 있소. 위대한 예언자여. 그대야말로 우리의 보호자이며 유일한 구원자요. 그대가 이미 사자에게서 들어 알고 있겠지만 다시 한번 말하리다. 우리가 그 가르침을 받들러 보낸 사람에게 라이오스 왕의 사살자를 찾아내서 사형에 처하거나 나라 밖으로 추방하는 것이 이 재앙을 면하는 단 하나의 길이라고 대답하셨던 것이외다.`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고 믿는 듯한 오이디푸스는 자신만만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절규한다.
‘내가 한 일이 가장 잘한 일이 아니라고 내게 가르치지도 말고 더는 내게 충고하지도 말라. 만일 내 눈이 멀쩡하다면 저승에 가서 아버지와 불쌍한 어머니를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인가! 그 두 분에게 나는 교살로서도 씻을 수 없는 그러한 죄를 지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낸 지혜를 가진 오이디푸스가 정작 내면의 진실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장님이 되어 유랑의 길을 떠난다는 결말은, 앞을 보지 못하는 예언자처럼, 오이디푸스가 내면적 진실의 세계에서는 눈을 떴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희곡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목장에서 내 발에 채워진 족쇄를 풀어주고 죽음으로부터 나를 구해내어 다시 살려준 자, 그자가 누구이든 그자가 죽어 없어질지어다. 조금도 고마울 것이 없는 짓을 했으니까. 그때 내가 죽었더라면 친구들과 나 자신에게 이토록 쓰라린 슬픔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나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난 대사였기 때문이다. 운명을 정복하고자 했던 처음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자신이 했던 경솔한 행동들을 후회하고 아예 부정하고자 하는 듯 한 모습이 너무나 비극적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운명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다는 고대적 주제의식 뿐만이 아니라 비극적 운명과도 직면하려는 인간 의지가 돋보인다. 모든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오이디푸스에게 도망칠 기회가 있었는데도 밝혀지는 비극적 진실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언자의 말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이오카스테와 크레온이 진실 캐기를 그만두라고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불안해하면서도 끝내 진실을 밝히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런 오이디푸스를 보면, 인간이 운명을 타고났든, 그렇지 않든, 어떠한 고난과도 당당히 맞서려는 모습이 숭고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운명은 존재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그 운명이 마냥 절망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운명이 있다고 해서 무력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때보다는,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애를 쓸 때가 더 보람찰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노력은 했다는 점에서 후회가 없지 않을까? 굴러 떨어지는 돌을 계속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의 운명일지라도.
더군다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비극에서 오히려 낙관적인 전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극은 불완전한 희극이라고 했던가. 이런 비극의 또 다른 면모는 코로스의 마지막 대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분이 오이디푸스다. 그는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고 권세가 당당했으니 그의 행운을 어느 시민이 선망의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보라, 그러한 그가 얼마나 무서운 고뇌의 풍파에 휩쓸렸는지를! 그러니 우리의 눈이 그 마지막 날을 보고자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는 죽어야 할 인간일랑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말라, 삶의 종말을 지나 고통에서 해방될 때까지는.’
삶이 끝날 때까지는 누구도 행복하다고 안심하지 말라고 하는 이 대사는, 그 반대의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다. 비극적이고 고통적인 삶이라도 언제든 다시 행복할 날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려는 인간의 의지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인생의 전도적 성격을 한 작품 안에 잘 그려낸 소포클레스의 이 희곡은, 그래서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읽혀왔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