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 이중섭과 아이들`을 읽고 이중섭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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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7-16

`천재화가 이중섭과 아이들`을 읽고 이중섭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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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사랑한 화가 이중섭

우리나라의 소를 주로 그렸던 화가 이중섭. 그의 그림은 미술책에, 그의 일생은 국어책에 나와 있을 만큼 이중섭이란 이름은 우리에게 친근하다. 하지만 나는 이 분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다가 책꽃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천재화가 이중섭과 아이들’ 이란 책은 이중섭의 일생, 그의 그림들과 설명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의 생애에서 보자면 그의 애국정신과 그림에 대한 열정이 크게 된 중요한 때는 그의 어린시절이다. 그의 어린시절,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3.1운동 때 민족 대표33인 가운데 한사람인 이승훈이 설립한, 그만큼 애국정신 강한 학교인 오산학교에 입학했다. 그 곳의 교장은 조만식, 국사 선생님은 함석헌이었다. 이중섭이 화가의 꿈을 갖게 된 곳도 오산학교였다. 부부교사인 임용련과 백남순을 만나고, 애국정신과 그림에 대한 애정을 알게 되었다. 이중섭은 일제의 국어 말살 정책으로 우리말을 사용할 수 없었을 때도 그림에 ‘ㅈㅜㅇㅅㅓㅂ` 이라는 한글사인을 넣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그의 애국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이중섭이였다면 나는 그런 용감한 행동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 이다. 또, 중섭의 일본유학 때는, 그때 만난 마사코(한국이름은 남덕)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또, 중섭이 다니던 대학에 루오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 루오는 바로 이중섭이었고, 쓰다 교수는 “조선의 고미술은 일본이 당해낼 수 없지.” 라고 말하는 등 중섭의 그림은 고구려 벽화 에서나 느낄 수 있는 힘찬 선을 되살리고 있었다. 이 시대가 일제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미술이 이렇게 인정받고 있으니, 한국인으로써 정말 자랑스러웠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중섭은 1954년 5월 마사코와 결혼을 했다. 이 당시에는 주위에서 보는 눈들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을텐데...... 이 둘의 사랑이 대단한 것 같다. 정말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 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이후 중섭은 형과 아들이 차례대로 죽게 되었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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