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야, 누리야`를 읽고 누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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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1-03-25

`누리야, 누리야`를 읽고 누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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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야, 누리야>를 읽고

오래 전 콜버그라는 지식인이 도덕지수를 운운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결손가정에서 잃기 쉬운 도덕지수는 곧바로 사회문제로 이어져 많은 범죄행위를 양산한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러한 도덕지수는 아버지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나는 과연 그럴까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면서도 내심 아버지의 도덕 지수를 나의 그릇된 행동과 결부시키곤 했다. 깊은 열등감이나 자괴감에 빠졌을 때 곧잘 나는 유전적인 자질과 환경적인 영향으로 인해 이 지경에 이르렀노라고 볼멘소리를 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 역시 그다지 열정적으로 찾으려 하지 않았다.
작가 양귀자가 본 누리는 편지라는 매개를 통하여 한번 걸러진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친숙하게 우리 일상사의 인물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작가는 그 현장감의 감동을 더욱 살리고 싶었던지 소설의 인위적인 허구성과 각색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부단히도 현실 속의 누리를 강조하는 듯 보였다.
돌리지 않고 말해서 누리 같은 삶은 감동적인 소재가 될 수는 있어도 소설 속에서 한 번 걸러진 감동에 의한 감동은 사실 현실감이 없다는 말이다. 설사 구태의연한 감동이 제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감동 이상의 교훈까지 찾기에는 동화를 받는 우리들의 가슴에 너무도 가짜가 많다는 말이다.
나는, 적어도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지 못해서 그런지 이야기의 결말이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대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누리의 현실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고 거부할 수 없는 일이고, 어쩌면 나 역시도 지척에서 경험했음직한 일들이기 때문에 굳이 결말의 소중함과 의의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책을 덮은 후 곰곰이 아이들과 어른들의 발상의 차이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너무도 단세포적인 요약일 수 있겠지만 그건 권선징악의 자연스러운 결말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하는…(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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