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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S. 벅의 `대지`를 읽고
내가 한창 독서에 흥미를 느끼던 무렵, 읽을 거리를 찾기 위해 책장을 둘러보다 두툼한 두께에 `대지`라고 쓰여진 책을 발견했다. 독서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께서 어릴 적 매우 인상 깊게 읽으시고 또 재미있게 읽으신 책이라 하셔서 주저 없이 손에 쥐고 첫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주인공 왕 룽은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부잣집 하녀였던 부인 오란과 혼인해 대지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평범하고 가난한 농부이다. 이 책의 저자인 펄 S. 벅 여사는 백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 농부들의 삶과 생활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주인공 왕 룽의 모습은 그녀가 중국에서 자라면서 보아온 평범한 농부들의 모습이 반영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 왕 룽의 모습이 마치 우리 내 할아버지 세대의 모습과 매우 흡사해 보이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땅을 아끼고 사랑하며 가족을 위해 뼈마디가 불거지고 손바닥 전체에 굳을 살이 박히도록 열심히 일해 가난한 집안을 알아주는 부잣집으로 만들어 놓고, 그 후에는 지친 그 몸을 대지에 눕혀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되는 모습이, 마찬가지로 땅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고, 자식들 뒷바라지로 허리가 굽어지도록 일해 마침내 자식들을 훌륭하게 성장시켜 놓은 우리 할아버지 세대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왕 룽이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땅을 떠나 인력거 꾼 노릇을 하며 살았던 것처럼, 젊은 시적 가난 때문에 농사를 짓지 못하시고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시며 아버지 6남매를 가르치셨다. 거기다 할아버지께서도 땅에 대한 애정은 누구 못지 않은 분이셨기에 내가 대지를 좀 더 인상 깊게,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지 않았나 한다.
그런데 대지를 각별하고 애정 있게 바라보았던 할아버지 세대와 달리 현재의 우리 세대는 대지에 대해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들은 삶을 대부분을 대지 위에서 보내고 대자연이 주는 시련에…(생략)
맞서 싸우면서 직접 얻어낸 대지의 결과물로 생활했기에 대지의 중요성과 고마움을 잘 알고 대지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겠지만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대지를 덮어버린 아스팔트 위에서 보내며 정신 노동으로 돈을 벌어 그것을 매개체로 대지와 아무런 접촉 없이 대지의 결과물을 얻으며 생활하기 때문에 대체로 대지에 대해 고마움 느끼기는커녕 대지를 단순히 재화를 벌어들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 마치 왕 룽이 대지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의 아들들은 대지를 그들의 쾌락과 부와 명성을 차지하기 위한 도구로서밖에 보지 않는 것과 같이 말이다.
`대지`의 후반부를 보면 장성한 왕 룽의 아들들이 땅을 팔려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연히 그 곳을 지나가다 그 이야기를 듣게 된 늙은 왕 룽이 쇠잔한 노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붙 같이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힘이 다 빠진 왕 룽은 계속해서 땅 만큼은 절대 팔면 안 된다고 중얼거린다. `대지` 초반부에 왕 룽이 오란을 데려온 황부자집 자손들이 방탕한 생활로 땅을 팔아치우며 점점 몰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에게는 이 장면들이 대지를 소중히 하지 않고 부의 도구로 이용하거나 마구 파괴해 버리는 인간들의 최후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왕 룽의 중얼거림은 대지를 하나의 수단으로서만 보게 된 이 세대 사람들에게 알리는 마지막 충고 같은 느낌이 들어 지금까지도 그 장면만큼은 내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해 낸 것이 이 작품의 저자가 의도한 주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 자신 나름대로 이 작품에서 괜찮은 의미를 발견해 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대지―지구 환경 또는 자연이라고도 불리는―를 아끼고 소중히 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지키고 더욱 인간다워 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며, 자연을 단지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한다면 몰락한 황부자집과 같은 비참한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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