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를 읽고 개똥벌레

개똥벌레
단편집 `개똥벌레`는 하루키의 팬이라면 대부분이 알다시피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의 모체가 되는 소설이다. 그래서 나 역시 다른 하루키의 단편집들에 비해 개똥벌레에 더 많은 관심을 쏟으며 본 게 사실이다. 어쨌든 간에 이 던편집 역시 하루키 특유의 상징적이고 환상적인 요소들이 잘 배치되 있어 독자로서 기대한 만큼의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
단편집 `개똥벌레`에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단편은 `헛간을 태우다`인데,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와 닿았던 건 역시 헛간의 의미인 듯하다.
주인공은 과거 애인이었던 여자의 새로운 애인이 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는 주인공에게 자신은 곧잘 헛간을 태우곤 한다며 조만간 주인공의 주변에 있는 헛간을 하나 태울테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인공이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자기가 헛간을 태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불에 탄 헛간을…(생략)

다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헛간을 태우는 행위는 그 헛간이 개인에게 어떤 것이든 간에 꼭 필요한 것이며 도덕적 허울을 뒤집어쓰고 사는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잠시나마 탈피하도록 하는 `일탈`의 과정이다. 즉 인간은 헛간을 태우는 존재인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개똥벌레는 상실의 시대의 초반 모티브와 똑같은 내용으로 쓰여져 있다.
어쩌면 누구의 말처럼 하루키는 하루에 몇 분 씩 단편을 써내다가, 그 몇 편을 모아 모아 장편을 만드는 수공예업자 같은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하루에 몇 분씩, 그는 새로운 환상을 쏟아내고, 결론하지 않는 방식을 택하는 것 같다. 아니, ‘결론할 여력은 없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 된다’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반발하겠지? 그래도 하루키를 읽는 이유는, 어차피 결론은 없다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은 어떤 의미에서는 장편보다도 더욱 우리에게 복합적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