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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이 책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나는 표지에 쓰여진 글을 보고 큰 자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이만을 위한 동화로 잘못 알려진 풍자소설의 최고의 걸작. 한 때 우리의 암울한 정치사와 관련, 지금껏 완역되지 못했던 세계 아이러니 문학의 최고봉!, 부정 부패한 정치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성인용 대작.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더더욱 호소력 있는 호쾌한 풍자소설의 고전!’ 이 글귀를 본 후의 난 어렸을 때 아동 도서 목록에서 자주 보았고, 또 내가 무한한 상상력만을 가지고 읽었었던 동화로서의 걸리버 여행기를 생각해선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에서 18세기 영국의 정치와 종교의 위선적 행동, 인간의 권위적 태도, 맹목적인 추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 무겁게 드러나고 있는 인간 혐오 사상이 사회를 풍자하고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걸리버여행기』를 읽으면서 전에 읽었었던『유토피아』를 다시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유토피아』역시 이상적인 사회를 기준으로 이상향을 제시하면서 그 당시 영국의 사회를 비판, 풍자하면서 독자들에게 사회를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을 제시하였다. 『걸리버여행기』도 역시 영국의 모습을 풍자하면서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
나는 제 1부 소인국에서의 걸리버의 경험이 어떻게 사고 방식의 변화로 연결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소인국에는 치열한 내부의 당파 싸움이 있었고, 이웃 나라 블레훠스크와 적대 관계에 있었다. 걸리버는 국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으며 소인국에 이익이 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예를 들어, 계란의 넓은 방향 끝 쪽으로 깨먹어야 한다는 쪽과 좁은 방향 끝 쪽으로 깨먹어야 한다는 관점 사이에서 벌어지는 많은 분쟁을 일깨워 주면서 국왕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는 긍정적인 관점을 보였다. 또한 그들의 법률에 대한 정당성을 옹호하면서까지 그들의 덕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왕비의 궁전에 화재가 있었을 때 …(생략)
오줌을 누어 불을 끈 사실과,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 적극적인 참가를 거부했기 때문에 속이 검은 정치가들에 의해 반역죄의 재판을 받아야 했다. 자신을 내몰기 위한 탄핵서를 보면서 그는 많은 의구심과 혼란스러움에 괴로워했다. 결국 자신의 눈을 지키기 위해서 또한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솔한 자신의 성질과 경험에 대한 부족의 덕분이라고 생각을 하고 소인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걸리버는 소인국에게 긍정적인 관점으로 다가갔으나, 그의 행동으로 인한 의심으로 인해 결국 부정적인 관점을 갖게 됐고, 소인국을 떠나게 된 것이다.
제 4부 말들의 나라에서의 휴이넘과 야후를 비교해 보았다. 휴이넘은 동물이다. 하지만 말들의 나라에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인간과 똑같이 이성을 갖고 판단할 줄 알며 천성적으로 덕성을 타고났다. 그들의 언어에는 거짓말이나 허위라는 표현이 없었고, 행동에서도 이성적인 면이 돋보인다. 그러한 이성으로 걸리버에게 훌륭한 휴이넘들과 함께 살면서 미덕에 대한 생각과 행동으로 여생을 보내려는 마음까지 갖게 하면서 그에게 인간 존재에 대한 많은 깨달음을 준다. 영국의 야후들은 타고난 이성을 사용하여 악덕을 향상시키는 반면, 말들의 나라의 야후는 악덕만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나라에서는 야후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단어는 모두 나쁜 의미를 갖는 만큼 야후는 매우 흉측한 동물로 여겨지는데, 걸리버가 봐도 야후는 완전하진 않지만 인간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지만 야만인으로 여겨진다.
휴이넘의 사회를 보면서 그들의 이성적인 면모라든지 판단력은 걸리버가 그랬던 것처럼 크게 본받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체제에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탄생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생각하면서 인간이 태어났다는 자체만으로도 성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야후들은 생명의 탄생을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의 결과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야후의 야만적이고 이성이 없음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걸리버가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개의 단어가 휴이넘의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의 것을 경험하고 느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참으로 이성적인 휴이넘이 존재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이 작품의 독특한 서술 및 묘사 방법, 여러 가지 문학적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생각해 보았다. 작품의 서두에서는, 주인공이 기행을 떠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그 부분에서 주인공의 성격은 양심적이며, 이상주의자임이 암시된다.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자만이 세상의 편견과 부패, 무능에 대해서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책읽기와 공상을 좋아하는 주인공은 독자에게 앞으로 벌어질 희한한 사건들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 줄 것을 은근히 권유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일종의 액자 소설 형식을 띠고 있다. 이러한 장치는 앞으로 벌어질 사건이 일어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체험한 실제의 일이라는 신빙성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 작품을 여태껏 읽은 어느 작품보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읽는 중간 중간에 예전에 읽었던 『유토피아』와 비교하면서 읽으니 더 이해가 빠르게 되었다. 말들의 나라 이야기에서 나는 왜 하필이면 작가가 휴이넘을 동물로 설정했는지에 의문이 생겼다. 아마도 그는 인간에게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문화란 순수한 동물들의 세계보다도 더 추악한 것이라는 폭로와 고발을 해주고 그들이 좀더 자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한 목적에서 설치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가공의 모형사회를 빌어서 왕족의 교만, 고관들의 아첨, 정치의 부패, 정당과 종파의 무의미한 싸움, 재판의 불공평, 교육의 무능 등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제도?문물?관습을 풍자했을 뿐만 아니라 말들의 나라에서는 인간 및 인간성 자체를 매도하고 부인해 버렸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동화와 소설의 차이를 극명하게 볼 수 있었고, 작가가 표현한 풍자라는 기법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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