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류를 읽고 김경진의 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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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3-04-09

격류를 읽고 김경진의 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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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안병도 공저/중앙 M&B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던 이순신장군이 옥에서 풀려나 권율 휘하에 있다가 백의종군하던 중 나라의 위태로움 때문에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해 그 날로 장흥 회령포에 이르러 간신히 12척의 판옥선을 수습하여 우수영에 당도한다. 이 때 왜군들은 4백여척에 2만명을 싣고 울돌목(명량)을 통과하여 예성강으로 진출, 이미 직산에 머물러 있던 육군과 합세해 한양을 치려는 계획이라 일본군에 있어 울돌목 장악은 중요한 과제였다. 임진년 전라수사로 있을 때부터 울돌목의 지형조건을 파악한 장군은 치밀하게 준비해 나갔다. 쇠사슬 두줄을 안목과 밖목에 건너 매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도록 울돌목에 장치해 두고 장수들을 불렀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사람이 길을 막으면 천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지금의 우리를 이름이라. 공들은 살 생각을 말고 조금도 명령을 어기지 말라" "나라를 위해 죽기로서 싸워라. 만일 조금이라도 영을 어기는 자는 군법을 시행하리라"하여 임전결의를 다졌다. 1597년 9월 16일 새벽. 드디어 어란포에 머물고 있던 일본수군들이 밀물을 타고 명량으로 공격해 왔다. 이순신이 12척의 배로 이를 공격하니 왜선이 이순신의 배를 포위하여 격전이 벌어졌으나 장군은 적장 마다시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이때 기다리고 기다렸던 조수가 썰물로 돌아서자 마다시와 기함을 잃은 왜군들은 혼비백산 도망가느라 바빴다. 이때 대파된 왜선은 1백33척으로 세계 해전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승리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명량대첩이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명량대첩은 진도의 울돌목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울돌목의 급한 물살을 얕잡아 본 왜군은 큰 피해를 입고 이 전투로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는 의미가 큰 전투이다. 흔히 이순신 장군하면 큰칼을 차고 무예도 상당히 뛰어나고 부하들을 지휘하는 카리스마도 있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아마도 이순신을 다룬 위인전의 영향일…(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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