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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호태왕을 읽고
광개토호태왕.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것도 같은데 또 어딘지 생소한 느낌도 들고 내가 알고 있던 광개토대왕의 제대로 된 호칭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됐다. 광개토대왕이야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대왕 중의 대왕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당시 그가 벌였던 전쟁과 정치의 근본이 단순히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고 정복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세상을 다스리고 나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백성의 평안한 삶과 단군조선때부터 내려오던 단군족의 단합을 실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순신의 삶이 거북선으로 대표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해명할 수 없었던 그의 위대한 삶을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가 잘 보여주었듯이 이 소설 또한 1600년전 당시 내외적 상황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면서 광개토호태왕의 인간적 고뇌와 삶을 그려주고 있다. 더욱이 중국에서 광개토대왕을 중국인이라고 우기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소설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소설의 근간이 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자료로서 중간중간에 놓아두어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생생한 장면을 그려낼 수 있도록 한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두우, 장협 등 귀족중심의 현 질서를 답습하고자 하는 세력들과의 치열함 속에서 단군을 중심으로 한 천손의 나라를 건국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소년 담덕의 대범함은 상무정신으로 무장, 왕에 대한 충성과 새 시대를 열고자 하는 기백으로 가득한 청년 장수들과 만나면서 날개를 얻었다. 그들의 당당함은 위기를 기회라 알았고, 오히려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역사를 만들어나가기보다는 역사에 묻혀 가는 듯한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드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 전쟁터를 누비는 용감무쌍함,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화려함 검술을 상상하는 것은 실로 기분 좋은 일이…(생략)
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허락된 호탕함이 우리에게도 가능하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온전히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을 텐데`라는 안타까운 생각에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백미는 소설을 통해 재탄생한 인물들의 넘치는 인간미가 아닐까 싶다. 끊이지 않는 외세의 침략과 불안한 당대의 정세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평화로운 삶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기며 이를 위해 고뇌하는 모습, 이는 등장인물들을 강렬하면서도 여린 듯한 존재로 변모시켰다. 그것은 말 그대로 치열함이었다.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이들의 비열함에도 물론 이러한 치열함은 있었다. 다만 그들의 치열함은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치열함이었기에 매력적일 수 없었으며 세상으로부터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 자신보다는 백성을, 고구려라는 하나의 국가보다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전체를 볼 줄 알았던 큰 도량을 가진 인물 광개토대왕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39년이었다. 그의 생이 짧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가 꾸었던 꿈은 너무도 광대해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자신의 삶을 위해 남겨두었어야 했던 에너지마저도 소진해야 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광개토대왕대에 닦인 기반은 이후 고구려가 민족의 방파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던 양분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대상을 바꾸어가며 섬기기 급급했던 사대주의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우리에게 고구려는 끝없는 그리움이다. 드넓은 만주 벌판을 호령하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음을 추억하게 만드는... 그들에게 부여된, 삶 그 이상을 꿈꾸는 치열함이 우리의 현실세계도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을 가져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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