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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저자 : 김만중)
몇 년 전, 우연히 책장에 항상 같은 위치에 꽂혀있던 재미없어 보이던 책.
더 이상 집에 읽지 않은 책이 없어서 슬쩍 꺼내보았던 책.
그 것이 나와 구운몽의 만남이었다.
어린 나에게 구운몽은 새로운 삶의 방향을 잡아주었다.
문득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를 때 마다, 내 머리 속에는 육관대사가 큰, 그러면서도 나직한 음성으로 꾸짖는 것을 느꼈다.
구운몽. 九雲夢.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아홉 명의 꿈.
삶의 무상함과 모든 보이는 것을 반드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금강경의 개념이
작품 전체에 묻어난다.
이번 기회에 다시 구운몽을 접하면서 마음속에는 해답의 실마리보다는 질문의 꼬투리가 더 많이 잡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우리이기 위한 것은?
집착과 추구와 탐욕은?
이 질문들에 답해가면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우리는 분명 김만중이 살던 시대와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소설 구운몽을 즐거이 읽을 수 있는 것은
그가 현대적인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 실제로 구운몽 속에도 당시대에서의 남녀평등 등의 시대와 달리 현대적인 생각이 묻어나있다.
우리가 구운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글이 쓰여진 당시대의 상황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김만중은 구운몽을 쓸 당시 유배 중이었으며, 그 때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위해 이 글을 지었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구운몽이란 소설은 금강경을 익살스럽게 돌려서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운몽이 말하는 가장 기초적인 개념은 욕망을 버리고 진리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이는 금강경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아니, 구운몽 속에서도 육관대사가 가지고 다니는 금강경은 이 글의 가장 기초가 되는 책이다. 김만중은 왜 하필이면 금강경을 선택했을까? 그 것은 금강경이 불교 경전 중에서도 가장 으뜸의 위치에 있으며, 그 내용이 명확하고 간단하나 마음에 쉽게 와 닿고, 그가 그의 어머니와 그 자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 때문이었을 것…(생략)
이다.
인생이란 무엇이냐? 쉽게 대답하기는 참으로 힘든 문제다.
구운몽에서는 인생은 더할 나위 없이 높으나, 또한 허무하기도 그지없다고 하고 있다. 구운몽의 가장 큰 흐름 중 하나가 인생을 짧은 꿈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치와 탐욕에만 가득 둘러싸인 삶을 비판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생은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얻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한 줄기에서 미래라는 열매를 따기 위한 것은 아니다.
나무에서 열매를 딴다면 당장은 즐길 수 있겠으나, 곧 다음 과실이 열리기까지 나무도, 나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특히, 나무를 가꿀 줄 모른다면 다음 과실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더 높다.
나는 우리의 삶 에서 우리가 미래를 알고,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방법이란 근원, 즉 뿌리에 해당한다.
우리가 나무를 기르는 방법을 안다면 언제든지(상시는 아니다 - 우리가 항상 원하지는 않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과실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미래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내의 진리의 차이는 무엇인가?
단순히 과일 따위의 껍질과 알맹이 정도의 개념은 아닐 것이다.
그 이상의 관계를 지니면서 또 그 이하의 관계를 지닌.
우리는 만물을 겉보기로 판단한다. 비록 우리가 서로와의 교제 관계를 통해
마음의 교감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판단한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가 숨기고자 하는 것은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조차도, 그 사람이 외면으로 하는 행동, 심리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이지 실제 속내와는 다를 수 있다.
구운몽에서 성진은 급작스러운 욕심과 집착이 생겨서 그러한 꿈을 꾸게 되었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우리는 흔히들 그런 말을 듣고 산다.
과연 사실일까? 우리는 언제나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보게 된다.
먼저 무언가를 얻고 싶어하는 마음을 나누어 보자.
욕심, 집착, 추구이다.
집착이라는 것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얻으려 하는데 그 정도가 지나친 것, 욕심은 필요하지 않으면서도 정도가 지나치게 얻으려 하는 것, 추구는 필요하기에 얻으려 하면서도 정도를 걷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선, 박학다식... 등을 추구하라고 하지 집착하라거나 욕심을 부리라고는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어야 할 것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정도를 걷는 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삶의 안위보다는 자신이 열어갈 미래의 방법을 “추구”하는 삶이 되자.
우리는 육관대사처럼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성진처럼 ‘깨달아야 할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구운몽이라는 제목을 생각해보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구운몽에서 중요한 말은 운. 즉, 구름이다.
구름, 그리고 꿈. 둘 다 현실과 정도와는 약간은 먼 느낌이 있는 단어이다.
흔히 구름, 그리고 꿈이라고 하면, 뜬 구름 잡는 소리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이 말은 중요하다.
-성진을 깨닫게 해 준 것은 몇 마디의 꾸짖음도, 몇 대의 매도 아니고
단지 잠깐의 꿈이었기에.
구운몽의 의미를 안다면 우리는 이 삶을 무료하고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삶이 비록 꿈 같다지만 우리는 그 잠깐의 꿈에서 모든 것을 깨달아야 하기에. 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현실이자 곧 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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