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가시고기를 읽고...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어쩌면 논리적 지배 구조와 비논리적 지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으로는 학문이나 과학의 세계 등과 연관되어지며 대체로 물질 세계에 가깝다. 이에 반해서 비논리적인 세계로는 부(모)성애, 우정, 사랑 등과 연관되어지며 대체로 정신 세계와 밀접하다.
지난 몇 주간 내 머리 속에는 온통 로봇대회, 정보올림피아드 등의 복잡한 논리 연산, 기호, 알고리즘 등으로 꽉 차 있었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논리적 구조가 지배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가시고기’의 부성애처럼 전혀 비논리적인 휴머니즘이 더욱 중요하게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세상을 세상답게 아니 살만한 가치가 있게 하는 것은 비학문적, 비과학적이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사랑 등의 켜 주는 사랑 등의 비논리적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생략)

1인칭 주인공 시점과 다움이의 아버지가 다움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3인칭 관찰자 시점..... 이 두 시점을 통해 주인공의 괴로움과 심리상태, 그리고 외적 표현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백혈병, 완치를 위한 힘든 치료 과정을 다움이는 점차 지쳐가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치유가 가능하다고 믿으며 참아낸다. 그러나 아버지는 점차 현실을 점차 깨달아가며 희망을 잃어 결국 투병생활을 중지하기에까지 이른다.
실로 안타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하게 여기는 자식의 치료를 포기하고 퇴원을 하는 모습은,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해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가슴이 아팠다.
역시 하늘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인지, 시골로 내려가 최후를 기다리는 시간들을 좀더 행복한 기억으로 남기는 다움이는 기적적으로 회복의 조짐을 보였고, 아버지는 점차 사라져가던 희망이 다시 살아나 산을 다니며 뱀이나 다른 몸에 좋은 것들을 가져다가 끓여 먹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헌신적인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오직 다움이만을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처절하게도 느껴졌다. 또한 그것은 그간 아버지의 안타까움과 치유에 대한 바람의 깊음을 보여주었다. 너무나 빠져있던 턱에 글을 읽던 나조차도 아버지의 모습에 안타까움과 괴로움을 같이 느끼는 것 같았고, 점점 늘어가는 것 같은 회복의 조짐을 느끼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다움이는 결국 병이 다시 도지고 말았다. 황급히 병원으로 돌아가고 수술의 필요성을 느낄 무렵, 운이 좋게도 한 착한 일본여성이 골수를 제공하여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마치 한줄기의 빛처럼...
역시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보다.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이렇게 극적으로 헤어나올 수 있다니.. 이것은 혹시 아버지의 처절하고 헌신적인 노력과 다움이의 희망찬 모습을 보고 하늘이 도운게 아닌가 싶다.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아버지는 곧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수술비 부담에 대하여 걱정한다. 아무리 방법을 모색해봐도 별다른 수가 없자, 다움이 아버지는 결국 자신의 장기를 팔아 수술비를 마련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장기매매 이전에 검사를 받던 도중, 자신이 간암환자로서 남은 인생이 6개월밖에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치료를 시작하면 완치될 수도 있는 기간이지만, 아버지는 결국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회복기의 다움이를 돌본다.
아직 아버지가 되보지 못한 나로서는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물론 회복기의 다움이에게 아버지란 존재의 보살핌이 매우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그 후의 일은 생각해 보지 않은걸까... 또한, 자신의 목숨을 그렇게 버리면서까지 자식을 살리고 싶은걸까, 또 그러한 용기는 어떻게 생기는걸까...
결국 아버지는 각막을 팔아 수술비를 마련하고, 다움이는 프랑스에 있는 이혼한 엄마에게로 보내진다.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고, 엄마를 원망하는 다움이를 떼어놓기 위해 아버지는 애써 차갑게 대한다. 다움이는 상처를 받고 떠나게되고, 아버지는 시골에 가서 쓸쓸히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정말 가슴아픈 장면이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자신의 생이 끝나 다움이도 볼 수 없을텐데, 그리고 다움이도 아버지를 평생 볼 수 없을텐데, 단지 다움이가 엄마의 품에 빨리 적응하게 하려고 모진 말을 애써 꾹 참으며 하고 있었다. 아빠의 차가운 말에 상처받았을 아이의 마음도, 아이가 한번이라도 돌아와 안겨주길 바라면서 차가운 말을 애써 하는 아빠의 마음도 왠지 이해가 갈 것만 같았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과정에서도 다움이를 잊지 않는, 그리고 다움이가 확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약속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노력이 안타까워 보였다. 비록 소설이지만, 다움이도, 다움이 아버지도, 그리고 다움이 엄마도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을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글의 제목으로 인용된 ‘가시고기’는 지구상에서 부성애가 가장 강한 생물이라 한다. 그래서 그 생태를 조사해 보았다. 가시고기는 길이가 5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고기가 보여주는 부성애는 매우 감동적이고, 헌신적이다. 단단하고 평평한 바닥에 주둥이로 구멍을 파고 수초를 물어와서 점액질을 배설해 단단히 엮고, 그 주변을 주둥이로 동그렇게 만들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은 뒤 바람을 불어넣어 안에 공기를 만드는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하여 둥지를 완성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암컷이 약 3~4초에 걸쳐서 짧은 기간동안 산란을 마치고 난 후 떠나버리면, 수컷은 그 자리에 남아 먹이 활동도, 잠도 중단한 채로 둥지를 지켜낸다. 또한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쉬지 않고 지느러미로 둥지를 향해 부채질을 한다. 둥지 안에 새 물을 넣어주기 위하여..
이러한 고된 과정 끝에 결국 새끼가 부화하면, 수컷 가시고기는 이미 힘을 다 하고 만다. 주둥이와 지느러미는 모두 헐어 버리고, 새끼를 보호하고 돌보는 힘든 과정동안 아름다운 몸의 색깔도 볼품없고 형편없게 변해버린다. 사력을 다해 새끼를 보호하고 돌본 가시고기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지만, 그의 부성애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 감동적인 부성애는 시작된다.
부화 후, 새끼들은 각각 자신의 아버지의 주위로 몰려든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의 살을 조금씩 뜯어 먹는다. 결국 가시고기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부성애를 실현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단순한 존재로만 생각되는-대부분 사람만 생각하는 동물이라 믿고있기 때문에- 동물들이 자식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의 아름다운 자태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내어놓는다니.. 부성애, 혹은 모성애라는 건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아닌, 모든 동물이 자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그런 의무이자 감정인 것도 같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여태까지 무섭고 무뚝뚝한 존재로 멀게만 느껴졌던 우리 아버지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우리 아버지도 역시 이러한 부성애를 지니셨을 텐데..
우리 집은 ‘엄부자모’라는 말을 정말 체험할 수 있는(부모님은 극구 부정하시지만) 집이다. 별로 좋지 않은 비교이지만 부모님 두 분을 서로 비교해봤을 때 어머니는 혼내는 일보다 타이르고 감싸주는 일이 많으셨고, 아버지는 타이르거나 감싸주시는 것 보다 엄하게 다스리시는 일이 더 많았다. 물론, 두 분 다 나를 사랑하시고 잘 되길 원하시는 거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두 분을 구분하여 대하기 시작했다. 속마음이 같다 할지라도, 겉으로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시는 엄마는 잘 따르는 편이었고, 어렸을 때 혼났던 기억만 남아 왠지 무섭고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아빠는 잘 따르지 않고 반항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아빠의 부성애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가끔 전화를 하면 자상하게 대해 주시는 목소리, 그리곤 언젠가는 내가 보고 싶다라는 표현도 직접하신 적도 있다. 그 동안 아빠께 차갑게 대하고 반항했던 모든 일들이 정말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가시고기.. 정말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작품이었다. 감정이 메말랐다고 평가받는 내가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책이기도 하고, 멀고 무섭게만 느껴왔던 아빠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를 마련해 죽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무섭게만 보이는 외면속에 있을 따뜻한 부성애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죄송하다.
결국 세상을 세상답게 만드는 것은 인간애를 중심으로 하는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지배 구조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학문도 과학도 인간애가 훼손되면 오히려 없는 것만도 못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