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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
러시아 1917년 10월 혁명의 중심세력, 레닌에 다음가는 권력과 권위,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혁명가, 대표적인 반 스탈린 주의자,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슈타인이라는 본명보다는 트로츠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레온 트로츠키의 자서전이다.
평소에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러시아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 인물에 대한 전기의 머리말이 인용된 구절에 내 눈길이 멈췄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혁명 속에서 트로츠키가 무기 없이 정복하는 것을 보게된다. 그 다음에 우리는 무장하고 승리하지만 갑옷의 무게 때문에 허리가 굽은 그를 본다."
레온 트로츠키.제목을 딱 보면 거의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사는 레온 트로츠키라는 인물을 뺀다면 도저히 이야기가 안 된다. 그렇게 그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여러 업적들을 안 순간, 바로 그때부터 내 생각 속에서도 도저히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나는 책을 샀고, 책을 보았으며, 책에서 느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유년기, 니콜라예프에서의 인생의 전환, 시베리아로의 유배, 1905년 2월 혁명, 1917년 10월 혁명, 독일과의 교섭, 적군 총사령관으로써 백군과의 내전, 그리고 승리. 신 경제정책, 레닌과의 협력, 스탈린과의 대립, 레닌의 죽음과 권력이동, 당내에서의 권력 투쟁, 실각, 축출, 국외추방, 마침내는 비자 없는 도피생활까지. 이 자서전을 터키의 외딴 섬에서 탈고한 1929년까지의 트로츠키의 생애가 트로츠키 자신의 문장으로 나에게 하나하나 차례로 와 닿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면, 책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하다. 흠은 딱 하나밖에 없다고나 할까. 그것은 트로츠키 자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태생 적 한계라고 까지 설명 가능한 흠이겠지만.
물론, 트로츠키는 이 나의 생애 외에도 수많은 책을 저술하였고, 그의 저서들은 모두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받고…(생략)
있다. 트로츠키라는 대 명문장가의 자서전, 나의 생애. 그러나 분명히 흠은 있다.
거의 모든 자서전이 그렇지만, 그의 생애는 지나치게 자의적 관점에서 써졌다. 물론 자의적 관점에서 쓰는 것이 자서전이겠지만, 트로츠키의 경우도 그럴까. 자의적 관점이 나쁜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트로츠키라는 인물의 특수성-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을 생각해 볼 때, 설사 한 인물의 자서전이라 해도, 그가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것은 단순한 자서전 이상의 의미, 역사연구에 활용되는 중요한 사료의 의미, 어쩌면 그 이상의 중요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후 트로츠키에게 느낀 감정은 내가 그에게 느꼈던, 그리고 느끼고 있는 경애와 존경에 버금가는 연민과 어떻게 보면 실망이라고도 볼 수 있는 감정이었다.
자서전은 자신의 생애를 솔직 담백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로, 자신만의 생각으로 쓰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내 주관이다. 그렇지만 <나의 생애>는 어떠한가.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점점 그가 스탈린과 대립하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에도 있는 사실이고, 여기에도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항간에 배어 나오는 분위기는 스탈린과의 대립에 대한 자의적 묘사-어느 정도의 비판도 고려된-를 벗어나, 스탈린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이 들어가 있다. 명문장가인 트로츠키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까. 아니면 느꼈음에도 스탈린에 대한 경멸의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일까.
나는 트로츠키라는 인물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의 행적과 그의 저서, 그에 대한 인용문, 그에 대한 평가, 그와 관련된 역사, 모든 것들을 보았을 때, 나는 그에게 경애와 존경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만한 인물의 성격과 식견 등, 여러 가지로 미뤄볼 때, 아무래도 주체 할 수 없었던 쪽이 아닐까.
그럼으로써 자서전이자 중요한 역사서이기도 한 이 책은 그럼으로써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다소 희석되고 말았다.
고로 나는 트로츠키에게 실망했다. 명문장가로써의 트로츠키에게 실망했다.
그러나 혁명가로써의 트로츠키, 그리고 인간 그 자체로써의 트로츠키에 대해서 난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이 자서전을 통해서 트로츠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생김과 동시에 그에 대한 나의 경애는 배가되었다.
국외추방을 당한 상황에서 트로츠키의 스탈린에 대한 감정,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혁명이 아닌 스탈린만의, 또 다른 방향으로의 혁명으로 러시아 혁명이 가고 있는데 대해서 과연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았을까. 젊다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1929년 국외추방 당시 50세였다. 늙지는 않았지만 젊지도 않은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원숙기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에겐 원숙기 때 활용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 남은 수단은 <책>이었다. 나는 혁명을 사랑한다. 그 무엇보다도. 그리고 레온 트로츠키는 내가 가장 경애하는 혁명가이고, 국외추방을 당한 無의 상황에서 책이라는 수단으로 다시 스탈린과 10여 년 간 대립해왔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을 정적에 의해 박탈당한 상황에서 다시 10여년 동안 대립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책, 나의 생애와 이 책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들의 힘이 아닐까 한다. 오로지 글의 힘으로 혁명을 이루려 한 트로츠키를 나는 경애하고 사랑한다.
트로츠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 동안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이번에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 것은, 바로 <글>의 무서움이다. 나는 러시아사를 잘 알지는 못 하나, 어느 정도, 조금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트로츠키의 자서전이 모조리 객관적이다라고 는 할 수 없고, 오히려 주관적이다 못해 스탈린에 대해서는 지나친 비난의 자세를 취한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트로츠키를 향한 마음은 실망은 고사하고, 종전의 존경과 경애에 연민까지 더해져서 연민, 경애, 존경이 합쳐진 감정이 되어 버렸다. 그 당시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트로츠키라는 인간의 인간적 매력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 하물며, 러시아의 내부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당시 사람들은 트로츠키의 인간적 매력에 매료되는 것을 떠나서 레온 트로츠키의 주장 자체를 지지하고 스탈린에 대한 감정도 쉽게 좋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얼마나 많은 지지층을 확보했을 것이며, 대중들 앞에서 그의 재능을 드러내 보이고 그의 적들에게 그들보다 자신이 우월함을 보이면서- 그는 그의 다른 정적들보다는 확실히 우월했다. -얼마나 쾌감에 잠겼을 것이며, 그의 글을 본 많은 사람들은 십중팔구는 모두 그의 추종자가 되었을 것이다.
모두 내 눈에 보이는 현상이다. 글이라는 것은 지금 다시 한번 느끼지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서 가장 훌륭한 무기, 흉기다. 글의 위대함과 마력, 트로츠키야말로 누구보다도 이것을 잘 알고 그랬기 때문에, 자신조차도 그 마력에 도취되어 글 쓰기를 좋아했고, 자주 글 쓰기를 하면서 그의 이상을 실행한 것이 아닐까.
나의 생애. 사료 적 가치는 물론 떨어진다. 그러나 자서전을 자서전 자체로만 보면 이 책은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걸작임에 틀림없다. 자서전만 가지고 볼 때, 그의 인생은 이상에 이상의 이상을 위한 삶이었다. 그는 이상을 위하여 그가 속한 맨셰비키 에만 얽매이지 않고 오직 이상을 위한 <혁명>의 실현을 위하여 그와 반대당파인 볼셰비키와의 적극적인 협력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혁명을 위한 레닌의 이상을 이어받기 위해 노력하였고, 혁명에 반하는, 당의 민주주의에 방해가 되는 관료제를 반대하면서 당의 민주주의와 소비에트 연방 인민들의 행복을 생각했다. 드디어 나는 그의 자서전을 봄으로써, 현재 우리나라 도덕교과서에서 말하듯이 공산주의라는 것을 <배급이나 타먹고 공산당 1당 독재를 위한 모두가 평등하게 빈곤한 것>이라고 정의 내리는 흑백 논리적 사고가 아니라, 사회주의도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결국 체제의 목적은 자유와 평등과 행복의 추구였다 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의 영구혁명론은 21세기에 우리가 이뤄야할 이상적 사회를 위한 영구혁명으로 새롭게 부활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냉전은 종식되었고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를 이기고 <승리한 이념>인 것을 확인했으나, 우리는 그 자본주의 하에 살고 있으면서, <과연 행복한가?>
과연 우리는 자본주의 하에 살고 있으면서 과연 행복한가?
자본주의 하에서도 사회의 부조리는 쭉 이어지고 있다.
나는 철두철미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의 자본주의만으로는 다수의 행복보다는 영원히 <소수의 행복>으로 갈 공산이 크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말했다.
체제전복은 반체제에서의 비판으로는 안되고, 체제내에서의 비판과 반체제에서의 비판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트로츠키의 혁명론이 반체제라면, 나의 이상인 <혁명>은 체제일까.
나는 혁명을 꿈꾼다.
트로츠키라는 한 인물을 경애하고,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랑하고, 변혁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경멸한다.
나의 이상은 변혁이요, 혁명이다. 난 아직 젊다. 아직 학생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트로츠키에게서 진정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았다.
이상만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칠 수 있는 뜨거운 가슴과, 이상을 실현시킬 혁명을 위한 차가운 머리.
버나드 쇼는 트로츠키를 이렇게 말했다.
??트로츠키는 적의 머리를 자르고는 그 안에 뇌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그 머리를 치켜든다 그러나 그는 희생자의 개인적 인격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는 (희생자에게) 정치적 신용을 전혀 남겨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희생자의 명예는 손상시키지 않았다."
트로츠키의 생애. 버나드 쇼의 이 말은 트로츠키의 인생을 압축시켜놓은 그 자체가 아닐까.
나도 이 말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그는 스탈린한테만은 그의 명예를 손상시켰다. 그러나, 스탈린은 희생자가 아니었고, 오히려 트로츠키 자신이 스탈린에 대한 희생자였다. 그리고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정말로 버나드 쇼의 말대로 그는 희생자의 명예와 인격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승부사요, 혁명가인 것이다.
트로츠키는 1940년에 스탈린의 암살자에게 비명에 죽었으나, 그의 정신만은 내 마음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길, 진심으로 빈다. 그리고, 그의 정신이 내 마음속에 고이 잠들어 내 인생도 그의 유언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생은 아름답다. 미래의 세대로 하여금 인생에서 악과 억압과 폭력을 일소하고 삶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라.??
나의 인생은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이고,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트로츠키와 나와의 약속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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