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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과 호랑이에게 동굴 속에서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을 먹으며 버티라는 명을 내렸다. 호랑이는 버티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왔고, 인내심 강한 곰은 100일 을 채우고 나와 사람이 됐다. 사람이 된 웅녀는 환인의 아들 환웅과 결혼해 단 군왕검을 낳았다. 이런 이야기를 실제 있었던 사실로 믿는 사람은 없다.
신화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대부분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신화는 해당 국가나 부족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습관으로 계승된다. 결국 전통도 만들어진다 는 이야기다. 런던대학 사회경제사 교수인 에릭 홉스봄(87)을 비롯한 세계 석학들이 함께 쓴 역작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이 정식 저작권 계약을 통 해 국내에 출간됐다.
이 책에서 홉스봄은 세계 각국에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것들이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것이 아니라 불과 몇 백 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 실을 밝혀낸다. 전통이 국가나 집단의 통일성을 위해 창조된 것이라는 말이다.
한 가지 예로 홉스봄은 영국의 전통 한 가지를 끄집어낸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고색창연한 마차를 타고 의회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웨스 트민스터사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영국 TV 방송사들은 하나같이 `천 년의 전통`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실제로 이 같은 전통은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전통은 이처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 대부분 영국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마차행렬을 지켜보며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많다. 오늘날 스코틀랜드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념하기 위해 체크(격자)무늬의 킬트(Kilt)를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한다.
외국인들도 남자들이 입는 일종의 치마인 킬트를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사 람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스코틀랜드를 떠올린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같은 전 통은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킬트는 수천 년을 내려온 전통의상이 아니라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통합된 18세기 무렵 잉글랜드인에 의…(생략)
해 발명된 옷이고, 체크 무늬는 그것보다도 훨씬 나중에 발명된 것이다.
원래 서부 스코틀랜드는 아일랜드와 비슷한 문화와 전 통을 갖고 있었다. 잉글랜드인들은 스코틀랜드인들을 `아일랜드의 여동생`이라 고 비웃었다. 훗날 잉글랜드에 통합된 이후 이들에게는 아일랜드에서 벗어나려 는 욕구가 생겼고 고지대 부족들의 각기 다른 전통과 잉글랜드를 통해 들어온 문화가 만나 스코틀랜드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처럼 스코틀랜드의 독자적인 문화가 만들어지자 "스코틀랜드가 아일랜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가 스코틀랜드의 영향권에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자신들의 문화가 한국 영 향권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이처럼 역사는 결코 합 리적이지 않다. 전통이 만들어진 건 근대국가의 탄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경 경계가 확고한 근대국가는 국민들의 충성심과 국민통합을 필요로 했고 연결고리가 되 어줄 상징물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전통의 창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프랑 스인들이 만들어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의 상징이 됐고, 붉은색 유니폼 이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된 것처럼 말이다. 결국 전통은 원래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당대를 사는 사람들이 디자인한 것이 다. 각기 다른 전통에 목숨을 거는 것보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 이 더욱 아름다운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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