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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이후 한국의 화두는 세계화다. 낙후된 전근대적인 사회구조가 IMF같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으며 낙후된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소위 ‘세계수준’에 맞춰 개혁해야 한다는 명제가 사회 전 분야를 휩쓸었다. 사실 세계화라고는 하지만 서방에서 우리에게 주문했던 것이나 우리가 추구했던 것을 들여다본다면 ‘미국화’라는 말이 오히려 더 적합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미국이란 나라는 세계화의 과정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국가에 대해서 적어도 한번쯤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그런 미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 같은 과 선배가 나에게 한 권의 책을 추천해 주었다. 그 책은 제목부터가 범상치가 않았다. ‘멍청한 백인들-Stupid White Men`. 왠지 엄청난 위력을 지닌 시한폭탄이 장착되어 있을 것 같은 위험한 직감이 들었다. 그 정도로 이 책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굉장했고, 이 책을 쓴 저자가 미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한 번 더 놀랐다. 역시 읽기 시작한 첫 장부터 표현은 점잖지가 못했고 맹렬한 비난과 분통터지는 증거물들로 가득 차있었으며 한 편의 프로레스링을 보는 듯한 소란스러운 재미도 있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미국사람이 자신의 조국을 비판하고 통찰하는 내용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은 희망의 나라였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갔고 정치와 사회, 그리고 경제와 문화에서 미국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근대화를 시작한 유럽이 식민지 쟁탈전 끝에 자신들끼리 서로 죽이는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전쟁을 종결시켰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새로운 폭군이 되었다. 이러한 폭군이 된 미국의 실상을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부시는 지난 선거에서 대통령 직을 훔친 왕도둑이고, 미행정부는 타락한 ‘부자아이들’과 노회한 백인들이 점령하였으며, 이들은 가난한 약자들을 보호한다면서 탐욕스러운 대기업들이 고혈을 착취하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생략)
현재 미국사회의 제도적인 부조리와 정경유착, 여성과 흑인에 대한 인권유린 등 미국사회전반에 대한 비리와 문제점들을 저자는 통쾌하게 비판하였다.
미국이라고 하면 잘 살고 복지가 잘 된 나라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은 일부 부유층, 그것도 백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이런 나라를 중심으로 전 세계가 운영된다는 사실에 기가 찼다. 세계화?미국화를 모범답안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최근 미국의 잇단 경제침체 및 회계부정, 휘청거리는 정치?외교?안전문제 등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충분히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무어의 예리한 비판과 자기반성은 비록 미국과 백인 상류층을 겨냥하고 있지만 인간이 살고 있는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미국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에서도 역시 심각한 여성의 인권 문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환경, 인간이 거세된 사법제도, 외국인들에 대한 심각한 수준의 인권유린, 기업과 정치인들의 이익만을 위한 제도와 정경유착, 이로 인한 환경파괴 등 미국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멍청한 백인들’에서 지적하고 있는 점들은 바로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 또한 미국의 그것과 너무도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린 그보다 더 할 것이다. 우린 직접적으로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았고 친미적인 정권을 유지해 왔으니까!!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식의 말. 정치적 무관심을 드러내는,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을 단적으로 표출하는 표현이라고 하지만 미국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드러내 놓고 탄압하는 공화당과 세련된 방식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똑같이 탄압하는 민주당을 보면 우리나라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미국의 그 두 당을 모델로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통쾌함과 함께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한 나라에 대한 반감을 키우기 위해서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미국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국가들에 대해 가졌던 일종의 희망, 우리나라가 모델로 삼아야 할 사회는 이렇다는 식의 희망마저도 내게서 빼앗아 가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씁쓸함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를 소재로 수많은 비판 서적들이 쓰이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 아닐까? 한국사회만 이럴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이럴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일종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 그것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할지, 사회를 바꾸는 그 누군가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여야만 한다는 생각까지 너무도 많은 것들을 시사하는 책이었던 것 같다. 끝으로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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