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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몇 장의 풍경과 몇 장의 추억과 몇 줄의 여운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정처 없는 허생원의 짤막한 인생의 한 도막이 담겨 있기도 하다. 혹은 그의 일생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장돌뱅이 허생원은 그의 오랜 친구 나귀와 장을 떠돈다. 허생원은 조선달과 함께 봉평 장에서 물건들을 거두고 충줏집으로 가는데 거기서 꼴사나운 짓을 하는 동이를 보고 어미를 들먹이며 나무란다. 동이는 어미 얘기가 나오자 풀이 죽은 듯 충줏집을 나간다. 얼마 후 술이 거하게 된 허생원에게 동이가 찾아와 장판의 각다귀들이 나귀를 못 살게 해 그것이 야단을 부린다 일렀다. 급히 나귀에게로 간 허생원은 나귀를 진정시키고 조선달과 함께 제천으로 향한다. 꽁무니에서는 동이가 따라 온다.
허생원은 달빛 좋은 틈을 타 젊은 날의 봉평에서의 추억을 꺼내려 한다. 조선달은 이미 수없이 들은 얘기지만 말리지 않았다. 목욕을 하려던 허생원은 달빛이 밝아 개울에서 하지 못하고 물레방앗간로 들어갔은데 왠 처자가 울고 있었더라.. 하며 빛 바랜 얘기를 털어놓았다.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한 때를 말이다. 동이의 어미에 대한 얘기를 듣다가 개울을 만났다. 다리가 없어 옷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조선달과 나귀는 앞서갔고 허생원은 동이의 부축을 받으며 갔다. 동이는 아비를 모르고 어미가 고향이 봉평이라는... 허생원이 넘어졌다. 동이의 등에 업혀 개울을 건너게 된다. 개울을 건너고 조선달의 핀잔을 받고서 길을 가는데 기울어진 달 아래서 나귀를 채찍질하는 동이의 왼손을 보게 된다. 허생원은 왼손잡이였다.
위에서 언급한 몇 장의 풍경이라 함은 보름을 갓 지난 달이 부드러운 달빛을 흐뭇이 흘리는 그 따스함과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 하는 그 고요함과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달에 푸르게 젖은 그 싱그러움과 메밀밭의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그 정막함 속의 아름다움,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한 나귀들의 걸음…(생략)
에 묻어 나오는 시골길을 말한 것이다. 달밤의 풍경에 대한 작가의 표현은 문자로서의 그것으로는 최선의, 맛으로 얘기하자면 입에 착착 감기는 그런 표현이 아닐까 싶다. 묘사라는 표현의 이름에 걸맞게 눈앞에 메밀밭이 그려졌다.
사실 메밀꽃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알지 못하지만 하얗고 예쁠 것이다. 이 몇 장의 풍경들은 실제로 접하기 어려운 데에서 도시에서 자란 아이에게 가상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갖게 한다. 몇 장의 추억은 장돌뱅이의 잊혀지지 않는 젊은 날의 어느 하루를, 아니 그 하루에 대한 그의 애정을 말한다. 달밤이라는 하루의 끝자락에서 봉평이라는 추억의 장소를 떠올리는, 그것도 아주 빛바랜 추억을 말이다. 이러한 여건들이 주어지면 항상 그 오래된 하루가 그의 입에 오르는 이유는 아름다움에 대한 것보다는 아쉬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몇 줄의 여운은 왼손잡이 두 남자에 대한 것이다. 장돌뱅이가 봉평에서의 추억을 얘기하고 동이가 아비를 알지 못하는 것에서 나는 이미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했다. 그러나 작가는 더 나아가 많은 힌트를 주었다. 독자가 하나의 의심도 불러올 여지없이 작가는 두 남자가 부자지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냈고 독자에게 결론지으라는 식의 소설의 묘미를 맛보게 하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거기에서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었던 것이다... 그 뒤 동이의 어머니를 찾아가...`라는 결론은 없다. 여기서 나는 여운을 찾는다.
현대인에게 있을까... 이런 예쁜 장소와의 추억.. 빛바랠 만큼의 세월도 견뎌내는 그런 추억말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추억의 유통기한은 아니겠지만 나는 엉뚱하게도 이 소설에서 그런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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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메밀꽃 필 무렵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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