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사나이를 읽고 모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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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7-21

모래 사나이를 읽고 모래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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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

어떤 잡지에서 <모래 사나이>를 소개하는 내용을 읽고 단박에 매료되어서 이 책을 샀다. 책에 실려있는 세 편의 이야기 모두 묘한 여운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책 제목과 같은 <모래 사나이>가 참 마음에 든다. 광기, 신비, 괴기등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독자를 악몽으로 데려가는 이 소설은 나에게 각별한 것이다. <모래 사나이>는 이 때까지 접했던 다른 어떤 책과도 다른 매력을 가젔다. 한여름에 학교에서 또는 친구들과 모여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할 때 특유의 묘한 분위기를 아시는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 분위기에 젖어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아닌 클라라와 올림피아에 대해 관찰하였다. 클라라와 올림피아는 대조적이다. 클라라는 무의식의 실체에 대해 완벽하게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는 듯하며 현명하고 논리적이다. 그에 비해 올림피아는 생명 그 자체가 없다. 클라라와 올림피아의 이미지 역시 대조적이다. 사람이 사람의 모습을 본 떠 만든 인형의 모습 속에는 말없이 사람의 행동을 응시하는 기분 나쁜 이미지가 도사리고 있고, 기계 인형 올림피아는 더할 나위 없이 피동적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이에 반해 언제나 조신한 모습으로 나타니엘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클라라의 이미지 속에는 여유와 포근함마저 감돈다. 어쩌면 작가는 고개를 돌리고 눈길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클라라는 나타나엘이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반박하지 않고 들어주며 원하는대로 이끌려 간다. 올림피아 역시 수동적이다. 심지어는 나타나엘이 키스를 하여도 그저 ??아, 아.?? 소리만 반복할 정도이다. 클라라는 주어진 틀에 맞추어 평온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인간이고, 이러한 삶의 태도는 결국 로봇 올림피아와 다를 바 없다. 즉, 능동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인간은 로봇보다 하등 나을 게 없다는 통렬한 풍자이기도 하다.
클라라는 나타나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해준다. 그러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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