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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기억해야 할 비극
-‘순이 삼촌’을 읽고-
2005년 1월 27일, 정부에서는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하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소식을 듣고 제주도와 평화가 무슨 관계일까 꽤나 한참을 고민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주에서 태어나고 제주에서 자라났으면서 정작 제주의 역사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심했던 나였습니다. 이젠 제주도의 대표 슬로건이 되어버린 ‘세계평화의 섬 제주도’ 그 때 저는 이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평화롭기 때문에 과거 역시 평화로웠을 것이라는, 그래서 앞으로도 평화로운 섬으로 남아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혹은 관광지의 이미지를 더욱 굳히기 위해. 하지만 ‘평화의 섬’ 그 의미를 그렇게 단정지어버린 저의 단순했던 생각이 ‘순이 삼촌’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너무나도 짧았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순이 삼촌. 사실 다른 뭍 지방에서는 삼촌이 남자에게만 국한 되서 부르지만 제주도에서는 남녀 구별 없이 친한 이웃 혹은 촌수를 따지기 어려운 친척들을 삼촌이라고 통틀어서 부릅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순이 삼촌도 여자였습니다. 주인공인 ‘나’는 서울에서 살면서 큰아버지의 내려오라는 말투의 편지를 받고 8년 만에 고향인 제주도를 찾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제주도는 푸근한 고향의 기억보다는 우울증과 찌든 가난의 공간이었습니다. ‘나’가 왔다는 소식에 모인 친척들과 그동안의 못 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주인공은 자신의 서울 집에서 한동안 가사 일을 돌보아 주었던 순이 삼촌이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분이 며칠 전에 갑자기 자살을 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큰아버지를 통해 듣게 됩니다. 사실 순이 삼촌과 서울 집에서 같이 생활 할 때 아내와 쌀 문제로 크게 다툰 적이 있었고 그 외에도 수차례 언짢은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서울에 올라 온 그녀의 사위에게 그녀에게 환청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자신의 오해는 풀리게 되었지만 정작 그녀와의 깊은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은 …(생략)
터라, 자살 소식을 듣게 된 ‘나’는 어딘가 모를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는 몇 년 전에 메주콩을 훔쳐갔다가는 누명으로 경찰서에 끌려갈 뻔 했는데 그 때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 바람에 범인으로 오해를 사게 되었고, 그 후로 늘 환청에 시달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파출소 기피증은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책은 1948년 음력 섣달 19일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 대량 학살 사건을 모델로 삼고 있었습니다. 이 날 아침 이 마을에 무장대의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군인 병력이 마을로 침입해 3백여 동의 집을 소개시켰고 양민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아 대량 학살을 자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대량 학살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순이 삼촌이었는데 살아남게 된 이후로 경찰기피증이 생기게 되었고 신경쇠약을 겪으면서 몇 년 전 있었던 메주콩 사건 때문에 결국엔 환청증세까지 시달려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필이면 대량 학살이 일어난 곳이 순이 삼촌네 밭이어서 그녀는 그 밭을 일구면서 자꾸만 나오는 뼈, 그리고 그날의 탄피 등을 골라내는 하는, 그래서 또다시 아픈 기억을 상기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혼자 살아오다가 결국엔 사람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던, 그리고 우연히 자신만 살아나게 되었던 그 장소인 자신의 밭에서 자살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순이 삼촌의 죽음이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 여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여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猶豫)를 보내고 오늘에애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언제나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 속에는 가족을, 이웃을, 마을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게 된 너무나도 슬픈 모습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보고나서야 ‘평화의 섬’의 제대로 된 의미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이 출판될 당시 7,80년대, 작가 현기영씨는 30년 동안이나 정치적 압력에 못 이겨 쉬쉬하며 목소리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 4.3의 불편한 진실을 처음으로 공론화한 소설을 쓰신 분입니다. 민중의 입장에서 풀어나가는 그의 문체는 출판 당시 금서조치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고문까지 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 덕분에 제주 4.3 사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질 수 있었고, 더불어 전 문화계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물론 사실을 바탕으로 꾸며낸 이야기, 소설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 시절을 겪어 보지 못한 우리들에게 제주의 역사 속에서 절대로 제주 4.3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의미 있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현기영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4.3사건. 역사라고 하기에는 어쩌면 우리 할아버지가 겪었고, 우리 할머니가 겪었던 정말 가까운 과거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작 제주4.3사건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도 역시 대학에 들어와서 ‘제주4.3’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면, 이 책을 접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또한 먼 단지 먼 얘기라고만 생각해서 4.3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듯 60여년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점점 4.3의 아픈 기억을 애써 잊어버리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잊을 수없는, 잊어서는 안 될 기억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머릿속으로 순이 삼촌의 일생을 다시금 그려보았습니다. 내가 그 시대를 살았더라면, 내가 순이 삼촌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제주 4.3이 제주민들과 너무나도 밀접했으며, 지금도 아직도 위로받지 못한, 찾지 못한 희생자들이 많은 것을 보면 한 사람의 일생 더 나가서 제주도의 운명을 바꿔놓은 중대한 사건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그에 따른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도 많지만 분명 그들의 억울한 죽음 그리고 지독한 생활을 겪어야 했던 그 때의 그 분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의 섬 제주. 억압과 핍박속의 과거에서 앞으로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기원의 섬 제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아니 그렇게 되도록 저도 앞으로 평화의 섬 제주를 기원하겠습니다. 더불어 이 책을 널리 알려서 4.3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역사 속에 가려졌던 그늘을 거두고 4.3에 대한 진실을 알리며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함을 늘 되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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