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죽어서도 말한다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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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07-21

신문은 죽어서도 말한다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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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죽어서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빚을 짊어지고 산다. 그게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물질적인 것을 수도 있다. 내게 있어서의 빚은 나의 첫 직장인 대한일보에 대한 것이다. 사주(社主)가 수재의연금을 횡령했다고 해서 신문이 ‘자진폐간’되던 1973년 5월 15일 나는 그 엄청난 태풍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러나 1년 후인 1974년 5월 14일 대법원은 전 대한일보 김연주 사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결국 수재의연금 횡령은 신문사를 폐간하려는 구실에 지나지 않았던 것. 그렇다면 왜, 무엇 때문에「대한일보」는 폐간되었던 것일까˝

73년 대한일보의 갑작스런 폐간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의문의 사건’으로 남아있다. 폐간 당시 대한일보의 사회부 기자였던 저자(신동철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가 폐간의 과정과 배경을 추적하여 책을 출간 하였는데,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지만 신문은 사라져도 기자들의 증언은 사라지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알려진 폐간의 진실은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경 사령관 ‘윤필용 사건’이다. 이는 윤필용이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힘을 합쳐 박정희 대통령의 ‘후계 준비’를 운운했다가 몰락의 된서리를 맞은 사건으로, 불행히도 대한일보의 김연준 사장은 윤필용과 가까운 사이였고 가뜩이나 신문사 수를 줄이고 싶던 박 대통령은 수재의연금을 구실로 대한일보를 폐간으로 몰고 간 것이다. 결국 정치적 대결에 신문사가 희생된 것이다.

1776년에 발표된 버지니아 주 권리장전에 보면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의 근간(根幹)이다. 이 자유는 독재 정부에 의하지 않고는 결코 제약되지 않는다” 내용이 있다. 언론의 입을 가리는 정부는 독재라는 표현이 세월이 지난후에도 지나침이 없는 것은 이 같은 상황이 계속적으로 (신문사 폐간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적 조치까지는 아니지만) 여러 형태적 변환을 거듭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세력다툼에 폐간된 대한일보에 대해 진 빚은 비단 해…(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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