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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성장은 S자형이지만 정신적 성장은 계단형이다
이 글의 화자와 동생은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정말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가난하게 생존해 나간다. 허기에 지쳐 쓰러져 잠이 들고 그렇게 밥을 굶기면서까지 어머니가 벽장속에다 몰래 모은 것이 무언가 했더니 겨우 쌀이었던-나는 지폐뭉치라도 상상했건만. 남의 집에서 이 일 저 일을 거들어주며 형제 몰래 모은 것은 집을 장만하기 위한 돈도 아니고 그나마 비상금도 아닌 굶어 죽을 것을 염려하여 숨겨둔 쌀이었다.
이러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영양상태 불량으로 마른버짐에 노란얼굴을 하고 있을지언정 우애가 돈독한 형제가 부러웠다. 늘 3살 많음을 상기하며 형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주인공 형과 ??형이니까?? 로 매번 순서를 양보하는 형 같은 동생이말이다.
이 책은 주인공 형이 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주변의 인물들과의 대인관계에서 겪게 되는 조금 특별한 일상을 어른이 된 후 기억해 낸 것이다.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 주인공이 내면적으로 성숙해 가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신체성장 곡선은 S자형이지만 정신적 성장은 계단형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사건을 겪고 나면 정신적으로 한단계 성숙하고 그것이 아프고 슬픈 것이어야 더욱 높은 계단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삼손과의 이별, 옥화의 죽음, 어머니에게서 받은 배신감, 선생님께 받는 불신감. 힘있는 곳에 합세하는 사람들의 약삭빠름, 억울함, 분함, 부당함......이러한 정서적 체험 속에서 형제는 성숙해 나갔다. 많은 것을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깨달으며 나름대로의 어른이 되어 간다.
형제는 배고픔과 가난으로 인한 멸시로 어른이 되도록 지울 수 없는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들이 또한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자극이 되었다. 우리 세대를 일러 배고픔을 모르는 세대라고, 고생을 모르고 자란 세대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배고픔 못지 않은 고통이 많다고 생각한다. 공부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마음 편히 놀 수 없음, 성적 스트레스, 친구와 경쟁하는 일과 경…(생략)
쟁에서 밀려났을 때의 패배감, 빠르고 정확한 정보에 늘 귀 기울여야 함 등등. 긴장과 초조가 우리세대의 기본적인 정서이다. 친척들과의 만남은 줄어들고, 학원선생님이나 과외선생님과의 긴장된 대인관계가 새로운 우리 세대의 대인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거의 하루를 보내지만 친구와 깊게 사귈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더욱이 형제조차 없는 나같은 사람은 더욱 척박한 토양에서 산다고 할 수 있겠다. 서울에 사시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동네 친구가 캐나다로 이민 떠났을 때, 나는 얼마나
슬펐었나 하고 자문해 보았을 때 너무 정서적으로 삭막해 있는 나 자신을 깨닫는다. 나도 따뜻한 사람이고 싶다. 주인공처럼 수십년이 지나도록 동네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고 싶다.
매주 일요일은 친구들과 축구를 하는 날이다. 그곳에는 10년지기 동네 친구들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몸속에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소리치고, 뛰며 축구공에 실어 날려보낸다. 그래. 내게는 친구들이 있다. 등하교길에서는 만나 이런저런 소문들을 나누는 친구들. 야자시간에 침묵을 공유하는 같은 반 친구들, 인터넷 채팅으로 소소한 정보를 나누는 친구들. 모두 불안과 초조의 고통을 나누는 친구들이다. 책 속의 형제에게 배고픔이 정신적 성숙의 밑거름이었다면 불안과 초조는 우리들의 정신적 밑거름이 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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