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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를 읽고나서....
판타지 소설이 가진 줄거리나 배경은 사실 비슷 비슷한 편이다. 활극이나 영웅담에 가까운 거대한 이야기가 주로 펼쳐지고 상상력에 의존할수밖에 없는 쟝르의 특성상 소설은 평범한 지상의 인간 범위를 벗어나 웅장하고 화려해지는게 보통이다. 그것은 독자에게 대리만족의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현재 출판되고 있는 대다수 판타지 소설은 작품성을 운운할 수 없을만큼 빈약함으로 일관하며 판타지 장르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로 인해 한동안 판타지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가 만난 「십이국기」는 다시 한번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 남다른 특징이 있었다.
「십이국기」는 판타지이며 동시에 심리소설이고 여러 등장인물이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기사, 전쟁, 마법 같은 것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서양식 판타지가 아니라 동양의 정서와 절기, 풍수, 역, 현무 등의 동양 문화가 기본 바탕을 이루고 있어 친근하기도 했다.
제목처럼 12국, 즉 열 두 나라가 있는 세상을 배경으로 각 나라의 왕과 왕을 선택하는 기린 타이호의 모험을 주로 그리고 있고 권력과 지배자가 갖는 속성, 왕좌의 무거움에 대해 고민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어 다양한 재미를 느낄수 있었다. 요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놀라운 단어 선택과 표현력으로 인해 메모해놓고 싶은 구절도 많았다. 여러 장점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속도감이나 스케일 따라가기 바쁜 여타 판타지에 비해 천천히 음미하며 생각하게 하는 여성적 섬세함이 다채로운 심리묘사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거다. 인간의 복잡다난한 심리를 「십이국기」처럼 정교하고 조용하게 묘사하는 소설은 드물다.
일본의 평범한 여고생 요코가 해객이 돼 12국 중 교국에 도착한 후 자신이 경국의 여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겪는 수 많은 모험에 빠져있다보면 인간이 가진 속성이 무겁게 다가 온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세계에 떨어진 뒤 요코가 겪는 심리적인 고통과 좌절은 그 정점에…(생략)
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당하지 않기위해 죽여야 하는 두려움과 갈등,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을 거라며 유혹하는 내면의 소리가 객관화 돼 나타나기도 하고 은인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자신을 유곽에 팔아 넘기려 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인간을 믿을 수 없게된 심리변화도 그 한 부분이다.
나의 진심과 달리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자신이 얼마나 판이한 평가를 받는가 하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선의가 선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편견이란 얼마나 큰 오해이고 현상적인 것 이면의 감정을 저울질하는 인간의 이중심리도 낱낱이 드러난다.
작가는, 과연 사람의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사실을 파헤쳐 독자의 뒤통수를 친다. 이 소설을 보며 감탄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어떤 커다란 사건의 놀라운 반전보다도 사람의 가리워진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처럼 섬뜩한게 없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줬다.
「십이국기」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하나 같이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가득하다. 경국의 여왕 요코를 시작으로 경의 타이호인 케이키, 연왕 쇼류와 기린인 엔키, 공왕 슈쇼우, 대국의 흑기린 타이키 등등 흡인력 넘치는 인물과 이야기속에서 한동안 헤어나올 수 없었다. 거침없는 붓과 섬세한 펜터치가 어우러진 야마다 아키히로의 삽화를 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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