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구나 우리역사 7 고려시대1 아! 그렇구나 우리역사7 고려시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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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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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구나 우리역사 7 고려 시대1

역사에서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삼국을 통일하여 전성기를 누리던 신라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골 귀족들 사이에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진골 귀족들은 권력 싸움에 힘을 보태기 위해 농장을 늘려 나갔고, 나라의 재정은 부족해지고, 거두는 세금은 많아지고 농민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마침내 지방의 고을들이 세금 내기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나라가 흔들리자 중앙 정계에서도 비판 세력이 나타났다. 그 중심은 육두품세력으로 혼란한 사회를 개혁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혼란이 계속되자 성주나 장군 중에는 세력을 넓혀 새 왕조를 여는이도 나타났다. 견훤과 궁예가 각기 나라를 세우니 한반도는 다시 세 나라로 나뉘었다. 이로부터 고려가 통일을 달성한 936년까지는 ‘후삼국 시대’라고 부른다.
왕건 가문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아버지 용건 때부터이다. 송악의 성주였던 용건은 궁예가 나라를 세우자 그에게 고을을 바치고 벼슬을 살았다. 왕건이 궁예를 처음 만난 것은 궁예가 도읍을 송악으로 옮겼을 때였다. 장수로 활약하면서 여러 번 승리를 거두어 궁예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높은 벼슬에 올랐다. 궁예는 많은 땅을 차지하자 자신의 능력을 극도로 과장했다. 스스로 미륵이라 자처하며 각종 의식을 거행하거나 직접 불법을 강의하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 궁예에 대한 반감이 점점 커져갔고 왕권도 궁예가 사람들에게 신망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궁예에 대한 충성심도 흔들려 결국 왕건이 무력 쿠데타로 궁예를 몰아내는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매듭을 짓게 되었다. 왕위에서 쫓겨난 궁예를 도망치다 분노한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왕건은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고, 연호를 ‘천수’라고 했다.
왕건은 경주로 가서 경순왕을 만났다. 그 후 왕건이 다녀간 지 4년이 지난 935년, 쇠약해진 나라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경순왕은 항복을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신라 천 년의 왕업은 막…(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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