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은 왜를 읽고 아랑은 왜

아랑은 왜
김영하의 장편소설 <아랑은 왜>는 "우리가 쓰는 소설, 우리의 소설"을 표방하고 있다. 결국 결정은 김영하 혼자했지만, 끊임없이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제시하며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효과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아예 영화처럼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을 묘사하기까지 한다. 파격적인 형식을 갖춘 소설이다.
<아랑은 왜>는 아랑전설이 과연 얼마나 진실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아랑전설을 보다 설득력 있게, 현대적 관점에서의 추리소설로 재구성하는 시도로 시작된다. 화자는 글을 쓰는 작가 김영하의 1인칭이다. 자신을 겁탈하려는 통인에게 반항하다가 살해된 아랑은 귀신이 되어 부임하는 수령들한테 마다 나타나고, 놀란 수령들은 줄줄이 죽어간다. 새로 부임한 용감한 수령은 아랑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범인인 통인을 엄벌하고 아랑의 시체를 찾아 후히 장사를 지내 주었다는 오래된 전설이 바로 아랑 전…(생략)

설거나 새로운 소재는 분명 아니다. 소설은 솔직하게 그걸 인정하며 시작한다. 그것부터가 새로웠고 기특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새로운 가설과 추리를 독자와 함께 하는 역할 분담까지...아랑은 왜를 읽다보면, 작가의 유도심문에 흠뻑 빨려들기도 하고, 그가 일부러 쳐놓은 포토라인 저 너머로 밀려나 철저하게 관찰자가 되기도 한다.
전설의 다양한 버전과 그 버전 사이의 빈틈을 정교하게 짜맞추고 있는 아랑은 왜...하나의 전설, 즉 하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바뀌고, 이 변이 과정 속에서 인물은 또 어떻게 변화하고 성숙하고 사라지는가? 또 그 인물에겐 어떤 성격과 역할이 주어지는 것일까...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작가를 괴롭히고 또 작가가 가장 신경을 써야하는 기본적인 것에 대한 탐구와 자문, 또 반문이 소설 <아랑은 왜>이다.
하지만 소설답게 있지도 않은 정옥낭자전이 등장을 하고, 심지어 실록마저 사실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다. 시종일관 짜릿하게 죄여오던 긴장이 일시에 풀어지며 괜한 배신감과 허탈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아니었을까? 책머리에서부터 마지막 장의 인용도서 안내까지... 작가는 섬세하고 예리한 소설 작업을 빈틈없이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랑 전설을 재구성하는 내용? 아랑 전설과 현재의 커플, 작가의 고민이 합쳐져서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다? <아랑은 왜>는 형식이 파격적인 만큼, 현재와 과거 미래를 왔다 갔다 하는 영화처럼 줄거리 중심에서 읽기보다는, 읽는 자체의 흥미로서 책장을 넘겨 가는 소설이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고 하는데,<아랑은 왜> 또한 번역을 해도 충분히 재미있을 만한 책이다.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어 전설을 재구성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또한, 독자를 계속 참여시키려는 노력으로 독자가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매력이 있다. 김영하가 앞으로도 계속 새로움을 선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