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나서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나서…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나서
저자 : 박완서
출판사 : 실천문학사
넌 죽을 병에 걸린 게 아니란다...
"얘는, 그게 어떻게 거짓말이냐, 농담이지."
"농담?"
"그래 농담이지.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들어서 즐거운 거, 그거 농담 아니니?"
농담에도 종류가 있다. 즐기기 위해 하는 농담과 어쩔 수 없이 하는 농담... 난 지금까지는 즐기기 위한 농담만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농담 따위 없는 줄 알았다.
지금은 밤 11시... 누군가 지금 나에게 한가지 농담을 하라고 하면 이런 농담을 할지도 모른다. 나 오늘 밤, 잠들지 못할지도 몰라... 왜?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아마도 이런 말을 듣는다면 닭살 돋는다고 그만 하라고 할 것이다. 농담인 거 아니까... 진심 아닌 거 다 아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거다. 그럼 다른 사람은 어떨까? 만약 그 다른 사람이 죽…(생략)

하는 그 시간만큼은 모두 편안해 지고 즐겁다. 하지만 그 농담의 대가는 그 사람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넌 꼭 살 수 있을 거야. 라는 말은 좋은 농담이다. 그에게 죽을병에 걸린 걸 말하고 난 뒤라는 전제 조건이 따르지만 말이다.
책을 읽고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내가 농담에 대한 너무 큰 과민반응을 보인 것 같기도 하다. 농담은 역시 농담인데 말이다.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면 난 당연히 너 참 이쁘다 라는 이런 종류의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농담이 담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될 리는 없겠지만 그런 농담으로 인해 인생을 바꾼 이야기를 쓰는 것도 그럴 듯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는 것은 바로 죽음을 속이는 농담인 것이었다. 넌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넌 죽을병에 걸린 게 아냐...
죽음과 삶의 차이...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된다는 걸 알았다. 한 집안에서 아버지가 죽는 대신에 딸이 태어났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 딸을 아버지가 다시 환생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아버지를 죽이고 태어난 악마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누군가가 죽으면 누군가가 태어난다. 죽음과 삶... 그것은 종이 한 장 차이도 안 되는 것이다.
혹시 돈이라는 거 어떻게 생각하는가? 돈이라는 게 아들의 죽음을 이용하면서까지 모으고 싶은 것인가? 그리고... 재벌이라는 거... 그건 또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들이 안 볼 때는 초졸하게 지내면서 남들이 볼 때는 근사하게 뭔가를 치르는 거... 그러면서 까지 가지고 싶은 직책인가? 난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 역시도 돈... 그리고 재벌들을 부러워했으니까... 누구든 부러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보고 어머니나 아버지의 죽음을 이용하면서 돈을 모르라고 한다면 난 당연히 거절할 것이다. 그렇게 잘 사는 것도 아니면서 왜 거절하냐고 한다면 난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라면 돈을 버는 데 당신의 가족을 이용할 수 있냐고....
불륜... 그것은 구속에 대한 자연스러운 자유다... 라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난 반대다!! 아니 찬성 반 반대 반이다. 그 사람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찬성이요, 그렇지 않다면 반대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게 이기적이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작은 속삭임 하나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들... 감성적이다고 표현할 수도,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다 본능이다. 본능은 막지 못한다. 불륜은 본능이다. 하지만 조금의 이성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것은 불륜이 아닌 한 순간의 일탈이다. 언젠가는 되돌아 올 일탈...
솔직히 이 책은 아직 어린 내가 읽기엔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을 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말투를 흉내내 가면 쓴 이 글... 어른들이 보기엔 유치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어른들의 생각을 접해 보고 또, 다른 자본주의에 대한 내 생각을 굳혀 가면서 아주 오래된 농담을 하나 알게 해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