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읽고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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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10-27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읽고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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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읽고

어떤 이는 그에게 프랑스가 그렇게 좋으면 프랑스에나 가서 살라며 욕지거리를 이메일로 날렸다고 한다. 어찌 보면 사사건건 프랑스 사회와 한국 사회를 비교해내는 모양새가 독자의 심사를 거스르기도 할 것 같다. 어디 비교대상이 좀 비슷이나 해야 그것도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가지, 이건 남의 나라를 부러운 시선으로만 바라보기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사회가 올곧지 못하다며 욕지기나 퍼부어대기도 편한 짓은 아닌 것이다.
특히 내가 거쳐온 교육환경을 적나라하게 고스란히 드러낼 때는 괴로움마저 느껴야 했다. 소외된 노동자의 자식으로 없는 돈 내가면서 국가의 질서와 안보를 위한 교육을 받아야 했던 쓰린 과거, 그리고 더욱 괴로운 건, 어쩌면 우리 다음세대까지도 피할 수 없는 환경이 되진 않을까 싶은 우려 때문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린 철저히 공화국의 모양새만 흉내낸 껍데기 안에서 공화국 국민인양 살아가는 형국인 셈이다. 하긴 우리는 프랑스처럼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끌어내야 했던 과정을 거칠 수 없지 않았는가. 제국주의 지배 아래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강대국의 전쟁을 우리의 터전에서 치러가며 전쟁의 후유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벅차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는 그런 `허울 좋은 공화국`이란 진단 위에, 소수의 지배권력이 다수의 민중을 소외시킨 `사회귀족의 나라`라는 비판까지 덧입힌다. 소수가 다수를 철저히 소외시키는 것이 가능한 이유로 그는 조중동의 활약을 꼽았다. 조선일보가 왜 나쁜지, 한겨레신문과 뭐가 다르냐고 의아해하는 박완서 씨의 말을 꼬집어내며 그는 부패한 언론권력의 거대한 몸집과 음모를 조근조근 짚어낸다.
그의 글을 읽고 난 후라 그런지 며칠 전, 아흔이 훌쩍 넘은 할머니와 일흔을 바라보는 고모의 대화에서 느낀 건, 이라크 침공을 조중동이 저렇게 보도했었구나, 였다. 기성세대의 시각이야말로 바로 조중동의 대대적인 활약이 빚어낸 성과가 아닐까. 어르신들의 대화를 듣고 갑자기 조중동의 밉쌀스런 활약에 돌을 던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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