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서 -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 를 읽고 매트 리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를 읽고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우리들은 마치 유전학에 관련된 정보와 뉴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복제 동물이 탄생했다는 발표, 줄기세포에 관한 온갖 논쟁들, 그리고 라엘리안 이라는 한 종교 단체의 산하에 있는 클로라이드사에서 복제 인간을 만들었다고 발표한 것까지. 신문과 뉴스에서 접하는 이러한 소식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와 유전학에 대한 식견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더 이상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적인 지식이 되어 버린 시대인 것 같다.
동시에 그것이 인간의 모든 생활을 유전학적으로 해석해 보려는 경향을 불러오고 있어서 윤리적으로 많은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유전자 결정론이 사람들에게 상당히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말이다. 가타카 라는 영화를 보면 유전자만으로 사회 계급을 결정하는 사회가 나오는데 아마 그것…(생략)

유전자의 이익과 각각의 개체의 이익은 대부분의 경우 개체가 살아남아야 유전자가 후대로 보존될 수 있기 때문에 일치하게 되지만 가끔씩 서로 상충할 경우가 있고, 그 때 유전자의 이익을 좆아 행동함으로써 개체가 약간의 손해를 보는 것 같이 행동하는 것이 우리가 ‘이타적인’ 행동이라 부르는 행동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생각은 인간이기 때문에 착한 행동을 해야 한다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착한 행동을 한다는 등의 진부한 도덕적인 설명에 질려 있던 나에게 무언가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보여 주어서 나를 단번에 매료시켰지만 무언가 허전한 점이 있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가끔씩 일어나고 있는 이른바 ‘살신성인’ 적인 행동들은 단지 착한 것을 요구하는 사상에 광적으로 물들어 버렸기 때문만일 것일까?
그러던 중 이 ‘이타적 유전자’를 읽게 되었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제목을 보고서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의 반론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잘 보니 리처드 도킨스가 그 책을 ‘이기적 유전자’ 의 인간을 위한 제 2권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이어야 한다고 논평한 것이 보였다. 이기적인 유전자와 이타적인 유전자의 구분이 그렇게 간단히는 단순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논평이며 또한 성선설과 성악설의 논쟁이 수천년 동안의 과제가 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우선 다른 모든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한없이 이기적인 유전자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우리들의 인간 유전자들이 몇억년에 걸친 진화의 시간 동안에 어떻게 협동체제를 구축해 왔는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집단 이기적’ 인 염색체들이 개별 유전자의 이기적인 하극상을 억압함으로써 전체 게놈의 통합성을 지켜내도록 인간이 진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어서 인체의 구성 세포들이 보여주고 있는 오묘한 ‘노동 분화’ - 소화를 담당하는 세포와 감각, 운동을 감각하는 세포들, 그리고 생식을 담당하는 세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분화된 -를 통해 스스로 분화가 덜 된 생명체들에 비해서 이익을 경험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한 종의 생물들이 그 호혜성을 기반으로 다른 인간들과도 재화와 정보 등을 교류함으로써 인간 사회 안에서 노동의 분화를 이루며 협동적인 사회를 추구해온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즉 이러한 사회적인 본능이야말로 다른 종과 인간을 구별하고 지구상에서 잘 적응하여 번성한 종으로써의 인간의 승리를 가져온 특징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본성의 기원을 이렇게 찾았다. “사회 질서의 뿌리는 우리 인간의 머리 속에 있다.”
이것을 토대로 사회적인 조화와 미덕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평등한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사회적, 물질적인 거래를 활발히 할 수 있도록 국가의 권력과 활동 범위를 축소하자고 제안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신뢰는 거래를 통해 획득되고 또한 신뢰는 미덕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를 주장하는 글은 수없이 많이 읽어 보았고 대부분이 진부하게 느껴졌지만, 유독 이 책이 돋보이는 것은 이기적인 유전자의 프로그램대로 만들어지고 그 안배대로 행동하는 인간이 보이는 이타적인 인간성의 아이러니컬한 관계를 유전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접근 방식의 참신성에 있는 것도 같다. 특히 다른 생명체들의 구체적인 습성과 정치학, 인류학 등의 다른 분야들을 동원해서 비교 분석하는 서술 방법도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 준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저자의 대부분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내게는 작은 아쉬움이 하나 남았다. 이 책의 저자인 매트 리들리는 최근에 쓴 화제작 ‘게놈’에서 맨 마지막 23번째 유전자의 장에 ‘자유의지’ 유전자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서 유전자 결정론으로 빠지지 않았던 작가답게, 과학에 대한 맹신이나 불신의 극단에 빠지지 않고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인간의 본성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읽어내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너무 ‘인간’ 이라는 종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쪽으로 빠져든 것은 아닐까?
내가 ‘이기적인 유전자’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을 다른 종에 비해서 특별하고 무언가 우월하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을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유전자의 생존 기계로 취급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그렇게 특별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유는 단 하나인 것 같다. 우리가 바로 인간이라는 종의 일원이라는 것.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인간이 특별할 뿐, 인간이 아닌 것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단지 현재 번성하고 있는 종에 불과하다. 개미 등의 곤충들과 비교해 볼 때 지구상의 우점종이 아닐지도 모르는 한 종.
아무리 사회유전학적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과학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자면 그 점에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좋을 텐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인간의 사회에서 호혜주의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며, 인간 본능일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선행은 선행으로 보답받는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을 목적으로 논리를 전개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물론 저자인해서 매트 리들리가 과학자가 아닌 과학 저널리스트일 뿐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더라도 저자의 시도는 생명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해석하려는 훌륭한 시도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시해 준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인류의 생존 양식이 더불어 사는 삶이어야 한다는 결론, 그 유도 과정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만약 그것이 유전학적 사실이 아닐지라도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결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