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와 그에 따른 패러디소설 `파트리크 쥐스킨트 이야기` 국어독후감 좀머 씨

보통의 독후감과는 달리 책 두 권을 읽고 둘의 공통점과 특징을 찾아내 비교, 대조하여 써야하는 독후감숙제가 한 동안 나에겐 골칫거리였다.
그래도 생각해 두었던 책이 있었기에 부담감은 한결 덜 했다.
내가 소개하는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로 익히 알려진 ‘좀머 씨 이야기’와 그에 따른 패러디 소설 ‘쥐스킨트 이야기’이다.
이 책의 저자이며, ‘향수’로도 잘 알려진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내가 독후감 책으로 선택한 좀머 씨 이야기에는 소설이란 대개 그렇듯이 허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삶의 체험이 진실되게 또 순수하게 녹아있는 작품이다.
세상과는 단절된 채 혼자 매일 걷고 또 걷기만 하는 좀머 씨의 모습을 이 두 작품에선 작가인 쥐스킨트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품 ‘향수’의 대대적인 성공에도 아랑곳없이 모든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생략)

버진 몇 번이고 태워다 주겠다고 말을 건넸지만, 좀머 씨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계속 지팡이를 짚고 앞을 향해 걸어갔다. 좀처럼 좀머 씨가 말을 듣지 않자, 아빠는 “어서 타세요, 좀머 씨. 몸이 흠뻑 젖으셨잖아요! 그러다가 죽겠어요!”라고 소리쳤다. 절대로 틀에 박힌 빈말은 사용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그러다가 죽겠어요>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어쨌든 그 말에 좀머 씨는 우뚝 서고 크고 분명한 어조로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말하곤 뒤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사람들이 <좀머 씨>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호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적어도 60킬로미터 내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심지어 개까지도, 늘 걸어다니기만 했던 좀머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좀머 씨는 소년의 인생의 여로와 몇 번 교차한 바 있으며 소년의 인생을 말한다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었다.
정말로 좀머 아저씨는 매일 걷기만 했다. 앞의 한 에피소드와 같이 날씨는 좀머아저씨에겐 아무 문젯거리도 되지 않았다. 소년이 너무나 좋아하는 같은 반의 여자아이 카롤리나 퀵켈을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을 때도 좀머 아저씨는 줄기차게 걷고 있었다. 카롤리나는 불쌍하게도 소년의 짝사랑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소년이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는 미스 마리아 루이제 풍겔 선생님께 억울하게 엄청 혼났을 때-늦게 도착한 것과 올림바에 붙은 코딱지사건-소년은 불공평한 세상에 복수를 하려고 제일 큰 나무인 가문비 나무에 올라가 자살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무에 뛰어내릴려는 그 순간 좀머 씨가 나타난 게 아닌가. 소년은 좀머 씨의 행동을 보고 이렇게 깨닫는다. ‘난 내가 어떻게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그 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을 하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불과 몇 분 전에 일생동안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사람을 보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책은 좀머 씨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소년의 키 170m, 나이 16살이 되었을 때도 좀머 씨는 여전히 걸어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 코르넬리우스 미켈네 집에서 TV를 보고 자전거로 저녁길을 달리던 중 자전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길가에 멈춰서야만 했다. 자전거를 손을 다 보고 손을 씻으러 호숫가로 걸음을 옮기는데.... 좀머 아저씨가 호수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그곳에 서서 뭔가 잃어버린 것을 물 속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제 목욕을 하려나 보다 생각을 했다. 하지만 누가 밤에, 그것도 10월에 옷을 다 입은 채 목욕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나중에 아저씨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때 이제는 아저씨가 호수를 걸어서 건너려는가 보다라는 터무니없는 한심한 생각조차 했다. 어느 새 물이 아저씨의 어깨까지 찼고 점점 목까지 찼다가, 목구멍까지 찼고 이어서 턱 위까지..... 하지만 소년은 굳어버린 채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소년이 가문비나무에 올라 자살하려고 했을 때 목격했던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던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좀머 씨 이야기를 패러디한 소설 쥐스킨트 이야기는 우리나라 작가가 쓴 작품이다. 그는 좀머 씨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보단 작가 쥐스킨트에게 더 관심이 갔기 때문에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의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내’가 ‘쥐스킨트’로 나온다. 그리고 소설엔 물론 좀머 씨 이야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쥐스킨트의 여럿 소설도 깜짝 깜짝 출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쥐스킨트 이야기에는 우리가 몹시도 궁금해하는 ‘왜 그렇게 좀머 씨가 걸어다녔는지’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었다.
자신은 한 때 엄청난 길을 걸어다녔다는 것과 이 세상에 안 가 본 곳이 별로 없을 정도로 돌아다녔다고 말하는 좀머 씨.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길을 걷는 것 뿐이었고, 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마임의 언어로 하나하나 천천히 말하고 있었다. 좀머 씨는 자신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기는 했지만 아우슈비츠도 경험한 세대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저질렀던 그 무수한 죽음과 죽임의 상처들을 어떤 식으로 용서하고, 어떤 식으로 벌할 것인가를 신께 그 해답을 물어 보았다고 한다. 신는 그에게 끊임없이 걸어다니라고 요구했다. 좀머 씨는 그 때 태어나서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 같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 동안 어떻게 걸었는지 모든 걸음걸이의 방식을 갑자기 잊어버려 모든 걸 처음 시작해야만 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오늘 같은 날의 호수처럼 그지없이 맑고 평화로움을 보았을 때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고요와 안도감이 엄습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자연의 법칙에 순종했을 때 발생하는 감정의 상태인데, 그 때 좀머 씨의 몸은 절묘한 화음이 나올 듯한 콘트라베이스 같다고 말했다. 풀벌레의 울음소리 같은 낮고 그윽한 콘트라베이스의 선율...
쥐스킨트가 좀머 씨에게 이제까지 다녔던 길 중에서 어떤 길이 가장 좋았던가를 묻는 질문에 좀머 씬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길은 영혼이 자유로운 길이라고 조용히 말했다. 하늘과 별과 구름과 달, 꽃, 나무, 숲, 풀벌레, 새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길. 어디를 가든 마음을 맡길 수 있는 길. 걷다가 숨이 차면 쉬었다 갈 수 있고, 내가 어느 정도 걸어왔는지 뒤를 돌아보며 헤아리지 않아도 되는 길. 주인도 없이 내버려진 땅 같은 길. 국경도 철조망도 없는 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지구의 끝까지 다다를 수 있고, 완전한 평화의 숨결이 목덜미에 와 닿은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의 전부라고 좀머 씨는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
내가 제일 잊혀지지 않는 말은 바로 좀머 씨의 마지막 말이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네.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우러나오지 않는데 바깥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쥐스킨트 이야기에서는 좀머 씨 이야기에서 작가 쥐스킨트가 독자들에게 여운으로 또 생각하도록 만든 좀머 씨에 대한 호기심, 궁금증, 비밀들을 자유롭게 펼쳐 보이고 있다.
특유의 재치와 유머, 그러나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드는 쥐스킨트 작품 ‘좀머 씨 이야기’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나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 동참했으며 결국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심어주었다. 나의 어릴 적 추억과 현재의 모습..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 같아 옛날로 돌아갈 수 없는 지금.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고 또 더 발전시켜 나갈테니까.
쥐스킨트 이야기 역시 좀머 씨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키고 좀 더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으며 좀머 씨가 생각하는 최상의 길이 우리 모두가 바라고 꿈꾸는 그런 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런 길이 다름 아닌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면 지금의 현실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또 우러나는 진실된 그 어떤 길도 아닐 것이다.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사라지고 꽃, 나무, 숲 대신 자동차소음소리와 주욱 늘어선 공장들로 가득한 길. 국경과 철조망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어져 있는 길. 완전한 평화의 숨결이 목덜미와 와 닿은 길이 아니라 매일 긴장하고 서로 견제하느라 상대방의 꺼진 숨소리만이 목덜미와 와 닿은 길이 지금 현재의 모습, 현재의 길이 아닌가 싶다. 좀머 씨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런 최상의 길이 만들어졌을 때 그 때야 비로소 평화와 기쁨이 넘쳐나는 진실한 세계가 오지 않을까.
두 책을 읽으면서 계속 느꼈던 사실은 ‘좀머 씨 이야기’의 작가 쥐스킨트가 그에 따른 패러디 소설 ‘쥐스킨트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나와 비록 서로 다른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지만 둘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좀머 씨 이야기의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화자 소년이 작가 쥐스킨트의 어릴 적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쥐스킨트 이야기의 작가는 그런 점을 공통점으로 이끌어내어 소설을 창작했고 두 소설을 엮어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은 재치와 순발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두 소설의 특징 모두 정체성 찾기가 아닐까 싶다. 나로 하여금 두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난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끔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내 느낀 점으로 비중이 많이 채워진 것 같은데, 사실 난 이 두 책에 대해서 아직도 할 말은 많다. 하지만 모든 것을 뒤로하고 여기서 이만 접으려 한다. 좀머 씨.. 그는 시대의 희생양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위대한 성인이 아닐까싶다. 그는 자신이 그 동안 걸어왔던 길과 내부에서 투쟁하기 위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길 밖으로 버렸다. 그를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영혼 깊숙한 곳에서 퍼져 나온다. 어쩌면 그는 전쟁을 겪었던 그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온 몸으로 안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럼 점에서 그는 성인이었으며 어떤 유파나 학파에도 속하지 않는 길에 대한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폐쇄공포증이니 뭐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등을 돌렸지만 그는 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런 언어로 스스로를 낮추고 묵묵히 고행의 길을 걸어왔다. 좀머 씨.. 비록 실상엔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인 인물이지만,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들의 눈에는 비치지 않고 어린 소년의 눈에만 진실되게 비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어린 소년의 눈에만 비치고 모두 어리석은 사람들은 등을 돌려버린.. 그 만큼 세상은 순수하지 못하고 최상의 길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문득 좀머 씨의 그런 사람들에 대한, 또 자신에 대한 외침 같은 것이 내 귓가언저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