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되고 얼룩진 역사를 넘어 황태자비납치사건을 읽고나서 황태자비납치사건

거짓되고 얼룩진 역사를 넘어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연관된, 과거의 역사를 다룬 무거운 내용의 소설.` 이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이었다. 친구로부터 인상깊은 소개를 받고 줄곧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 책은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읽은 지도 꽤 오래된 책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감동 깊었기에 이번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우선 무척 어렵고 우울한 분위기의 책일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첫 장부터 깨져버렸다. 이 책의 배경은 현대 일본이다. 그리고 일본의 후소샤 교과서 문제로 한?일 간 교과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건이 첫 이야기의 시작 전 기본 배경으로 깔리고 있다. 소설의 첫 발단은 일본의 어느 가부키 극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본의 황태자비가 납치됐다.` 실제 사건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일본의 황태자비 마사코는 가부키 극장에서 옛 동창들과…(생략)

느다란 목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다나카는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또, 범인은 한 명이 아닌 또 다른 공범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낸다. 그리고… 이 엄청난 사건의 뒤에는 또한 엄청난 역사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다나카는 힘든 수사 끝에 과거 한성 공사관의 전문 4장을 찾아낸다. 그것은 을미사변 당시 한성공사관에서 일본에게 보내왔던 전문 중의 일부였다. 그 전문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을미사변 당시의 사건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그 전문은 한국인인 나에게도 엄청난 수치심과 부끄러움,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궁중의 시위대란 자들이 위기에 닥치자 왕과 왕비와 왕세자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갈 수 있는가. 또, 어떻게 수십 명의 시위대들이 한 사람의 일본 낭인에게 쫓겨 달아날 수 있는가. 나는 그저 놀랍고 실망스러울 나름이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던 것은, 바로 납치범 중의 한 사람인 임선규라는 목사와 황태자비 마사코의 이야기였다. 임선규는 마사코를 산장 안에 감금하고 곁에서 감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납치범과 인질과의 관계로서가 아니었다. 임선규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황태자비를 대했다. 아니, 오히려 황태자비로서의 위엄이 떨어지지 않도록 최대한의 예의와 존중을 갖춰 대한다. 황태자비는 그런 임선규의 모습을 보면서, 납치범으로서 그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그에게 친밀감과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중에, 마사코는 임선규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까지 발전하고, 도망칠 기회가 있었음에도 탈출하지 않는다. 그만큼 서로에게 인간미를 느끼고 친숙해진 것이다. 황태자비를 납치한 납치범과 납치된 황태자비가 말이다. 그러나, 다나카는 수사 끝에 범인의 완전한 정체를 알아내고, 그 결과 임선규와 함께 범행을 주도했던 김인후라는 젊은 학생이 일본경찰의 총에 맞아 죽게 된다. 그리고 마사코의 간청과 절규에도 불구하고 임선규는 체포된다. 일은 그렇게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일본의 교과서에 대한 최종 심사가 열리는 날, 심사장에 갑작스럽게 황태자비 마사코가 등장한다. 그리고 마사코는 극비로 숨겨져 있던 비밀 문서, 한성공사관 발 극비문서 435호를 황태자비의 권한으로서 만인 앞에 낭독한다. 그리고 하염없이 울고 만다. 그 장면에서는 황태자비뿐만 아니라 나도 울고 말았다. 일본은, 일 국의 왕비에게 차마 해서는 안 될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명성황후의 신위를 더럽히는… …. 급기야 마사코는 일본 교과서의 완전 수정 권고를 내려달라고 간청한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 말에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친다. 그리하여… 그 날의 마지막 심의는 그렇게 끝이 난다.
그리고, 긴급한 회의 끝에 임선규는 비밀리에 석방된다. 마사코는 그에게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를 바라는 사과를 담아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 중 가장 인상깊었던 한 마디가 있다. `역사의 강이 거짓과 은폐의 가면을 벗고 유유히 흐르는 그 날, 우리 함께 명성황후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제를 올릴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일본과 한국은 서로의 빛나는 문화를 전해주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갈 수 있겠지요… ….` 과연 모든 이의 가슴을 울리는 말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진정한 역사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과연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이며, 미래의 역사를 이끌어 나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
정말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 준 책이었다. 때로는 흥미진진하게, 때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 넘치는 수사과정으로 읽는 재미까지 한결 더 해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한?일간의 역사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탐색한 이 책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