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를 읽고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어느 한 때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 쇼윈도우 마네킹의 미소처럼 싸늘한 자신의 얼굴과, 평소 보이지 않던 양심의 문에 귀를 기울일 때가 있을 것이다. 거울은 잃어 가는 조용한 영상을 펼쳐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가슴을 한없이 울게 만든다.
현실 세계에서는 사랑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 하고, 양심의 문은 무관심 속에 닫힌지 오래되었으며, 인간들은 자신의 몸치장을 위한 갖가지 귀중품과 장식품을 가지고 만족해하는 현대 문명의 노예들이 되어버렸다. 이 모든 것의 문제는 기술 문명의 발달로 시작되었다.
사무엘 베케트는 잃어 가는 것을 찾기 위해 이 책의 고도라는 선생을 통하여 간절한 신의 구원과 잃은 것을 찾기 위한 인간들의 노력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시골 길, 말라빠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황량한 들판…(생략)

구덩이에 빠져 도와달라고 외치는 럭키와 포조를 만난다. 블라디머와 에스뜨라공은 그들을 구해주며 갑작스레 벙어리가 되어버린 럭키와 장님이 되어버린 포조의 모습에 놀라 그들의 처절한 운명의 내용을 알고 싶어한다.
포조는 관객을 향해 이런 말을 한다. [같은 날 태어나 같은 날 죽어 가는 삶 앞에 어느 날 누구는 벙어리가, 누구는 귀머거리가, 누구는 장님이 되어버리죠]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에 이어 한 소년이 나타난다. 그리고는 선생님은 오늘은 못 오시고 내일은 꼭 오실 거라고 전한다. 그들은 또 다시 삶의 허무와 희망을 잃고 만다. 그리고 죽기 위한 결심을 하고 시도까지 하지만 내일의 희망이라는 약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또 다시 기다림의 선택을 한다.
내일이라는 영원함 속에, 빛을 원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내일 목매달아 죽을 걸, 고도씨가 오지 않는다면 말이야. 만약 그이가 온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될 거야]라는 영원한 음성 속에 막이 내린다.
완전한 이해를 이 책 속에서 얻지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감상과 핵심을 정리해 볼까한다. 생각하는 것이 파괴되어가고 의식이 해체 되어 가는 현대인들은 포조와 럭키가 보여준 것처럼 주어진 시간 속에 어느 날 누구는 벙어리가, 귀머거리가, 장님이 되어 버리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일 것이며 불구의 몸으로 사랑도 진실도 양심도 모두 잃어버린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25시라는 책에 담긴 한 귀절 속에는 미를 사랑하고 존중한 것은 그리이스인들이며, 법률을 사랑하고 존중한 것은 로마인들이며 인간을 사랑으로 이끌어 온 이들은 수많은 고난을 무릅쓰고 지켜온 기독교인들이다. 이렇게 물려 내려온 값진 유산 중에 사랑하는 마음이 인간들 속에서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랑의 정체를 베케트는 고도라는 선생을 통해 나타내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의식의 파괴로 인해, 불구의 몸이 되어버리는 현대인의 모습 속에 고도라는 선생은 참으로 큰 뜻을 가지고 있다. 무의미하고 희망 없는 삶 속에 현대인의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그 무엇의 빛으로 고도선생은 기다림의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고도가 의미하는 잃은 것을 찾기 위한 문제를 지닌 우리에게는 대단한 기다림의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고도선생이 나타나는 날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던져주는가? 그날은 삶의 끝이며 해결 방법이며 해방일지도 모르지만 종교적인 면에서 그는 신과 같은 존재로 우리의 구세주를 뜻할지도 모른다. 이 책 속에서 그는 한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인류에게 기다림의 용기밖에는 주지 않았다. 끝까지 기다리는 용기의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잃어 가는 사랑과 양심을 뜻할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잃게 한 인간들, 스스로의 죄로 인해 스스로 양심의 문을 열어야 할 그날에 바로 고도 선생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신 스스로가 고도가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기다리고 발견해야 할 것은 바로 인간 마음속의 사랑과 양심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