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속의 쳇바퀴

쳇바퀴 속의 뫼비우스의 띠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자신의 현실을 비관하며 절규하던 영희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듯 작은 파장이 일며, 가슴에 서려있던 한이 풀리듯 맘속까지 후련해 졌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왜일까? 작가가 어째서 이토록 터무니없는 말들을 내뱉고 있을까?
나는 뒤늦게 서야 알고 감탄했다. 팬지꽃과 공장폐수는 따갑고 화려한 햇살 속에서 가난이라는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반복하며 쳇바퀴를 굴리고만 있는 빈민가의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리고 화려한 수식어들과 풍부한 표현에 주눅 들어 하며,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가의 태도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철거통지서를 받아들고 가난의 아픔을…(생략)

절과 고통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니,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때문에 빈민가의 열 두 가지 모습들은 나에게 충분히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시켜 줄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었을까?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작지만 누구보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난쟁이 수리공의 모습은 내게 가히 충격적이었다. 가난해서 이리저리 체이고 만 살아가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운명이지만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불평한마디 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 남들이 난쟁이라고 놀려대지만 그들에게 반항은커녕 오히려 맞기만 하고 있다.
가난이 죄일까?
아니, 가난은 결코 죄가 아니다. 사람에게 몇 가지씩의 고민이 있는데, 장애는 그 고민 중 하나이듯이 가난 역시 한가지 환경일 뿐이다. 그런데도 난쟁이 아저씨는 계속해서 사회에 순응하기만 한다. 그리고 결국은 공장 굴뚝 안에서 자살이라는 결과로 자신의 운명의 쳇바퀴를 멈추게 한다. 반항이나 불평한번 해보지 못한 채 말이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처구니없는 현실 속에서 사회를 비판하고 현실을 슬퍼하며 나 역시 사회 비관론자가 되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난쟁이 아저씨를 제외하고도 모든 사람들의 쳇바퀴가 도저히 멈춰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시작에서 작가가 제시했던 ‘뫼비우스의 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작가가 아무런 의미 없이 이를 소재로 제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알고 있는 기초상식에 의하면 뫼비우스의 띠는 단순히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직사각형 종이를 꼬아 붙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뫼비우스의 띠는 이 책에서만큼은 중앙에서 커다란 의미를 내포하는 작가의 핵심이 되고 있었다.
이 책은 제목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뫼비우스의 띠’같은 소설임이 분명하다.
뫼비우스의 띠...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이어서 내부를 막았다고 할 수 없다. 또 벽만 따라가면 밖으로 나올 수 있으니 마치 뫼비우스의 띠같은 사회에 갇혔다고도 할 수 없다. 그 차제가 그야 말로 착각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현실’이라는 쳇바퀴 속 세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이 추상적인 단어들이 주는 가슴 아픈 감정과 현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주어져 있으며, 누구를 위해 돌아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책장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결론을 내렸다.
‘사랑’이란 삭막한 일상을 반복하기만 하는 쳇바퀴 속에서 투명한 줄로 이어진 희미한 한 가닥의 희망이며, ‘현실’이란 사랑으로 극복해야만 하는 뫼비우스의 띠 속에 있는 쳇바퀴의 표면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