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고 진주귀고리소녀

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고
북구의 모나리자라는 별칭에 걸맞게 <진주 귀고리 소녀>는 모나리자의 묘한 신비로움에 나란히 서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귀족의 자녀인지 하녀인지 그녀의 계급을 생각하기 앞서 이상스런 끌림을 흘리는 소녀... 소설에선 이 주인공 소녀 그리트가 하녀임을 명백히 밝히는 걸레질과 귀족의 딸임을 드러내는 모피를 거부했다고 하나, 끝내 귓불을 바늘로 뚫어 진주귀고리를 달게 됨으로써 그녀는 하녀의 신분을 벗었다.
하녀는 일로 몸이 다져진 하녀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우유를 따르는 여인`으로 이젤 앞에 서야 하며, 귀부인은 귀족의 고상함을 모피나 보석 같은 것으로 슬쩍 치장을 하고서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으로 붓끝에 그려져야 했다, 그리트가 베르메르의 앞에 설 때엔... 그래서 몇백 년 뒤에 그녀의 모습을 보는 나는 노란 망토의 모피옷을 걸치고 별다를 것 없는 진주귀고리를 다는 것이 그녀가 거리…(생략)

테지만 일단은 작가의 설정은 성공적이다. 이만큼 소녀를 사랑스럽게 그려내기란, 미묘한 감정까지 섬세하게 읽을 수 있게 화폭에 담기란, 화가가 소녀에게 사랑을 가지지 않고서는 해내기 어려운 작업일 테니. 아이를 무리하게 많이 낳아 생활에 허덕이는 중년의 화가, 그 화가의 물감을 식구들의 눈을 피해 몰래 갈아주는 소녀의 스치는 사랑은 소설로써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결국 소녀와 화가는 `가능한` 모험만 한다. 화가는 소녀를 그려내는 일로 그의 사랑을 마감하고, 소녀는 끝내 분에 맞는 푸줏간 청년과 결혼하여 그녀의 신분에서 가장 평범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간다. 선을 넘는 위험한 사랑이 아니라, 도전하여 끝을 보는 사랑이 아니라, 독자의 취향에 따라 어정쩡한 소설이 되고도 남을 수 있겠단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보다 이 소설의 아쉬움은 그림과 나란히 올라서지 못한 작품에도 어깃장을 놓을 수 있을 법하다. 단 한 폭의 그림만으로 이리도 감수성 풍부한 소설을 만들어낸 것에는 감탄을 하나, 실은 그림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 느낌은 절대적으로 아쉽다. 그래도 그림 속에 묻힌 이야기를 허구임을 알면서도 들추어내는 듯한 묘한 기분을 끝까지 끌어가는 흥미로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