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어멈을 읽고 홀로어멈을 읽고…

홀로어멈을 읽고…
「홀로어멈」 마지막을 읽고 나서 창가로 다가선다. 아파트 너머 남쪽 저편 하늘에 싸라기 눈 흩날리고 있었고 빨간 우산 쓴 아이 하나 길을 건너고 있다. 거기 조선의 역사가, 식민의 모순이, 봉건의 고난이 참다랗게 새겨져 있고 신자유주의라는 세계국가로 가는 기관차가 무제한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그렇다, 이 해체와 탈중심의 시대에 여전히 우리는 저처럼 눈싸라기 흩날리는 혼돈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화다닥 깨는 몽롱의 망상들, 빛의 속도로 오가는 디지털의 감정 감정들--. 아 이제 우리는 다가오는 새 천년을 시간 단위로, 아니 분 단위로도 계산이 가능한 모롱이 에움길에 다달아 있는데 이 무슨 황망의 망상이란 말인가! 그러나 싸라기 안개는 망나니 칼춤처럼 휘날리고 광섬유를 오가는 정보들은 빛의 속도로 불나방처럼 태양을 향해 돌진하는데, 나는 공선옥 작 「홀로어멈」을 한 손에 들고 몽롱하게 하늘을 바라…(생략)

시오. 학교를 안 빌려줬으면 이런 일도 없을 거 아냐? 임대를 하려거든 사람 봐가면서 하라구. 괜히 일 만들지 말구."
주인공 정옥이 조카를 데리고 사는 갑철과 함께 아이들 학교 교통비 문제로 교육장실에 들렀다가 나가던 중, 늑골에 비수 찌르듯 들려온 소리다. 이쯤 되면 이미 결말과 극적인 반전은 암시되어 있는 법. 말없이 서 있기만 하던 청년 갑철은 분노의 숨이 차서 유리를 깨 버리는데 닭들이 날아오르고 모두들 허둥대는 작품의 마지막 광경과 봉두난발 망나니의 칼춤과 저 눈싸라기는 어찌 그리도 같은가!
자 이 대목에서 독자인 우리들은 분개해야 하는가? 아니다. 기가 막혀야 하는가? 아니다. 따져야 하는가? 그도 아니다. 일상적인 현실을 일상적이 아닌 것처럼 표현한 작가의 현실인식을 원망할 일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작가는 참으로 순진하지 않은가! 리얼리티를 극화(劇化)시키기에 이 대목은 분명히 부족하다. 그렇다면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작가가 왜 그랬을까? 소설을 써 온 이래로 민중지향성을 잃지 않았던 작가는 이제 절정에 다다른 신자유주의에 대한 항거의 방식으로 이러한 해체의 귀환 형식을 택하였단 말이겠지! `내 멋대로 하겠다`는 저 광포한 신자유주의와 작가는 아득하게 외롭게 대결하면서 일상적인 순진성으로 자본의 권위와 봉건의 모순을 해체시켜 보겠다는 찬란한 발상은 녹아 내리는 눈싸라기와 무엇이 다른가! 하염없는 눈싸라기는 흩날리고 나는 상상의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난다.
다시 처음으로 가 보자. 이야기 흐름은 선적인 시간구조를 회상으로 처리하여 파괴했는데, `매실` 사건으로 주인공의 편치 않은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살구로 매실주를 담는다는 착란의 에피소드는 정옥이 살고 있는 폐교의 을씨년스러움의 묘사를 거쳐서 전기가 나가 버린 상황으로 옮아가다가 그 혼란을 잊어버리는 기제로 선택된 술 사건으로 이행한다. "촌에서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게` 전혀 말이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켜 준 것은 오랜 친구 순아였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부산의 신발공장과 부설 중고등학교로, 스무살 공돌이와의 결혼 그리고 이혼, 그 이혼 후에 쏟아지는 사회의 따가운 질책들, 그 모순의 질책을 반전시키는 글쓰기와 농촌으로 안착하여 살고자 하는 작가 정옥. 겨울 까치밥으로 달린 감을 따다가 혼줄이 난 이야기, 그리고 어떻게 하든 정옥과 마을에 들어와 사는 두 남자 중 하나와 인연을 맺어 주고자 하는 순아와 그의 남편.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모순의 폭발점인 교육장실의 사건.
모순의 폭발지점인 교육장실 사건을 향하여 여러 에피소드와 과정들은 진행하지만 여러 가지로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감 사건만 하더라도 아무리 경우가 없는 할아버지라도 그런 식으로 혼자 사는 여자를 내몰아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밖에 농촌 출신인 정옥이 살구와 매실을 혼동했다는 것이나 시골 사람들의 생존방식에 맞추어 살지 못하는 것 등은 묘사나 형상화의 부족이라기보다는 리얼리티, 특히 실제 농촌공동체의 현실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균형감각의 상실에는 까닭이 있는 것만 같아서 마구 춤추는, 성안길 관식이 머리처럼 헝클어진 싸라기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리고 묻는다. 주인공은 저 거대한 사회의 모순에 항거하고자 함인가. 그 항거가 벽에 부딪치자 술과 글 속으로 들어가서 고통을 상쇄시키고자 했는가. 답은 없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큼 하염없는 싸라기만 몰아친다.
주인공이 세상을 얼마나 낭만적으로 인식하고 있는가는 지방신문의 신춘문예 소설에 당선했다고 글을 써서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대목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얼마나 순진하고 순진한 생각인가? 글을 쓴다는 창작의 행위와 생활인으로서 생존한다는 이 근원적 모순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은 참으로 순진한 여인이다. 이 시대의 작가가 얼마마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천연스럽게 농촌으로 배치한 작가마저 원망스러워졌다. 그것도 폐교에서 닭들과 난장을 트며 어린 아이 셋 데리고 산다는, 아무리 보아도 비현실적인 구도는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이제 싸라기는 창문을 때리며 이 시대의 모순에 대한 반란을 준비하는 태세다. 분단체제라든가 민족민중이라든가 하는 거대담론들을 깡그리 잊어버린 채로 완전한 세계제패의 꿈으로 사정(射精)해 버릴 지경인 신자유주의자들의 머리 위로도 눈싸라기는 사정없이 쏟아지겠지?
나는 이 작품의 키워드(key word)는 여성에 대한 무자비한 폭압구조와 그에 대한 항거라고 해석해 보았다. 처처에 놓여 있는 남성우월주의와 여성열등의식은 주인공을 `술 먹는 여자`로, 완강한 봉건가부장제도와 비정한 천민 자본주의는 주인공을 섬진강가 농촌으로, 무제한의 속도로 질주하는 남한 사회에 대한 자신의 제어 장치는 글을 선택하게 한다. 봉건가부장제도의 남성중심주의가 해체되어야 한다는 당위성과는 전혀 다르게 여전히 이 사회에는 중심과 주변이 존재하고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은 선천적으로 주변에 배치될 수밖에 없음을 강력하게 드러내고자 할 때, 응당 리얼리티는 약화되는 법. 그렇다면 작가는 페미니즘의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썼단 말인가?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하거나 읽어서는 안되겠지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친구 순아의 인식 태도 속에서 묻어 나는 남성중심주의적 사고 방식과 그에 대한 주인공의 순응적인 태도는 현실의 상황을 객관화시키는 데는 성공적이지만, 현실 모순을 극복하고 미래사의 전망을 제시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허무주의 즉, 현실의 벽을 느끼는 데서 딱 멈추고 정옥이 부닥친 좌절과 절망을 헤쳐나가는 미래사의 전망은 보이지 않으니 오늘날의 모순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데서 더 나가지를 않는다. 한 마디로 중심주의의 모순을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잘 드러내기는 했지만, 현실순응주의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설 조짐이 선뜻 보이지 않았다. 섬세한 내면묘사와 이야기구조의 유연성 그리고 치열한 문제의식이라는 미덕(美德)이 아름답고 찬연하게 빛나고 있지만 좀더 욕심을 가져 본다면 「홀로어멈」은 그러하다는 나의 해석에 독자들은 동의하시리라--. 나는 해석의 조각들을 날리는 싸라기에 실어 보낸다, 부당한 모순과 폭력적인 중심구조를 해체할 의지를 찾아서 우리는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고 속삭이면서 말이다.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거기 변한 것 같아도 변하지 않고 바뀐 것 같아도 바뀌지 않은, 이 사회의 모순들이 봉두난발 관식이처럼 춤을 춘다. 이 땅, 백년 전의 반봉건 근대 시민민주주의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근대의 길을 걷지 못했기 때문에 `홀로` 사는 `어멈`이라는 기이한 조어(造語)를 써야 하는 이 시대의 아픔이 흩날리고 있었다. 책장을 다시 덮고서 우리 할머니들,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두 어깨에 앙바티고 서 있는 눈물의 역사를 바라본다, 하염없이 싸라기눈은 흩날리는데.